[내가 읽은 책]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면

입력 2021-05-29 06:30:00

법의 정신(몽테스키외 글/ 문예출판사/ 2016년)

청보리밭 풍경-배태만
청보리밭 풍경-배태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더구나 강자들 틈에서 하루하루 버티려면 약한 개인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법이 필수적이다.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프랑스에서 살았던 몽테스키외는 오랜 여행과 사색을 거쳐 법의 필요성을 담은 '법의 정신'을 저술했다.

몽테스키외는 1689년에 프랑스 보르도 남쪽 시골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샤를 루이 드 스콩다인데, 보르도 고등법원 판사이던 백부가 돌아가시자 그의 이름과 관직을 물려받아 몽테스키외 남작으로 불렸다. 11살 때 돌아가신 영국 출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몽테스키외는 영국의 정치 체제에 관심이 많았다. 영국과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각 도시의 풍습과 제도뿐만 아니라 자연현상도 관찰하여 '법의 정신'에 반영했다. 그로 인해 이 책은 선험적 원리 대신에 귀납적 방법을 적용한 과학적 인문학의 산물이다.

몽테스키외가 살았던 시대는 '짐이 곧 국가다'라고 한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통치한 시기였다. 신교인 프로테스탄트와 구교인 가톨릭 간 30년 동안이나 지속된 잔혹한 종교전쟁이 끝난 직후이기도 했다. 신을 중심으로 한 법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던 바로 그때이다.

절대 군주와 교회 권력이 백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에서 몽테스키외는 절대 권력은 결국 부패한다는 생각으로 절대 권력의 전횡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답을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과 로마의 공화정에서 찾았다. 양국의 정치사상가인 로크는 이권분립을 주장하면서, 입법권과 행정권의 분리를 통해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했다. 그 뒤를 이어, 몽테스키외는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행정권에서 사법권을 분리할 것을 주장하였다.

"정치적 자유는 오직 권력이 남용되지 않을 때만 존재한다. 그러나 경험에 따르면 권력을 쥔 자는 예외 없이 권력을 남용한다."(132쪽)

고전은 시대적 환경을 배경으로 태어난 책이다. '법의 정신'에서도 그 시대 상황을 헤쳐 나가고자 한 흔적이 보인다.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을 주장하며 궁극적으로 의도한 통치 체제는 귀족이 왕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는 귀족정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귀족이라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법의 정신은 과연 무엇일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은 완벽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자가 중요성을 고려하여 일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했다. 완역된 다른 출판사의 번역은 매끄럽지 못한 듯해서 비록 축약본이지만 이 책을 선택했다. 법의 정신은 원전의 일부가 축약되어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어 보이지만 전체 맥락을 통찰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나라 독서와 출판 문화가 더 나아져서 제대로 된 완역본이 곧 나오기를 기대한다.

배태만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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