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이해인 시인은 5월에 빛의 자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 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시인은 우리 모두의 소망을 작은 시 한 편에 담았다. 빛의 자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지혜의 빛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모든 문제의 답이 인문학에 있는 것처럼 인문학 광풍이 불었다. 아직도 인문학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통하는 것 같다. 인문학이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다 보니 이제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고전 교육', '교양 교육' 같은 전통적 의미나 삶의 의미를 밝히기 위한 지적 탐구에 천착하는 것을 인문학이라 칭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인문학을 '고전 읽기' 정도로 여기고, 고전 읽기를 통해 지혜의 빛을 찾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다산 정약용은 강진의 귀양지에서 두 아들에게 간곡한 편지를 썼다. 그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경전 읽는 것에 힘써야 하고, 독서종자(讀書種子)가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종자는 씨앗이다. 즉 독서하는 씨앗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산은 고전 읽기가 끊어지면 집안은 물론이고 나라도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고전 읽기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모든 지혜의 빛은 고전 읽기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 홍길주는 지혜의 길을 이렇게 밝혔다.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운물(山川雲物)과 조수초목(鳥獸草木)의 볼거리와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무가 모두 독서다." 그렇다. 진정한 지혜의 빛은 단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일상에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막 교부들의 금언'에서 지혜의 빛을 찾았다. 사막 교부 가운데 안토니우스라는 수도승이 있었다. 그는 문자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로마 황실은 자문을 구하기 위해 그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최고 신학자인 아타나시우스도 지혜를 구하기 위해 그를 찾았다.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은 그의 지식과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이집트 사막 깊은 곳까지 달려왔다.
안토니우스는 신학 공부를 한 적도 철학 수업을 들은 적도 없었지만, 신학자들은 그에게 배움을 구했고 철학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했다. 우주의 기원과 인간 정신에 대해 논쟁을 벌였던 철학자들이 감탄하며,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안토니우스, 당신이 거하는 사막 속 움막에는 한 권의 책도 없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지식과 지혜를 찾았습니까? 그때 안토니우스는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이 나의 책(증거)입니다." 그에게는 문자로 쓰인 책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도 책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이라는 한 권의 위대한 책에서 나온다'는 안토니 가우디의 말처럼, 진정한 지혜는 자연과 일상을 읽는데 있지 않겠는가.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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