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양교에 있어서는 공납금의 체납자에 이를 단행하였으나 마침내 교육 정신에 배치됨을 느껴 곧 취소하여 등교를 시키고 있다는데 전기 중학교에 있어서는 전교에 한한 정학 처분은 사회여론이 용인하지 않으리라는 견지에서 이를 학교 단위로 일학급씩 지난 22일부터 단행하고 있다하며 일학교 70명의 생도 중 목하 50여 명이 정학 중이라 한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11월 25일 자)
대구중학교의 학생 50명이 무더기로 정학 처분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학교가 요구하는 기부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교 기부금을 둘러싼 논란은 수시로 불거졌다. 학부모들의 비난도 거셌다. 학무당국은 기부금을 거두지 말 것과 이를 어기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재학생들에게 기부행위 강요는 금지한다면서도 신입생들 이야기는 쏙 뺐다.
그러다 보니 당국의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입생에게 기부금을 강요하면서 재학생도 포함했다. 문제는 기부금을 내지 않은 학생들의 처리였다. 기부금의 독려는 교사의 주요 임무 중의 하나였다. 끝내 기부금을 내지 않은 학생들은 정학 처분을 받았다. 기부금 체납이 많아 아예 며칠 동안 문을 닫는 학교도 있었다. 학교가 기부금에 목을 매는 사연은 나름 절박했다. 당국의 예산지원이 원활치 않자 학부모로부터 돈을 걷어 교실건립, 인건비, 학교경비 등을 충당하려했다. 그런 사용처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불신은 컸다.
학교들은 기부금뿐만 아니라 공납금을 내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시로 정학 처분을 내렸다. 대구중도 이미 공납금을 체납했다는 이유로 정학처분을 내린 바 있었다. 교육 당국조차 공납금을 내지 않은 학생들의 등교를 막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교육 당국은 잡부금이나 다름없는 기부금의 강요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았다. 교육 당국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학생들의 학습권 박탈에 대해 이처럼 이중 잣대를 보였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어려운 사정과는 상관없이 공납금과 기부금 전체의 완납을 요구했다. 당시 대구중은 공납금 3천300원에 기부금 5천 원을 합해 총 8천 300원을 다 내도록 했다. 완납하지 않으면 학급별로 학교 등교를 중단시켰다. 학생들에게는 큰 수치감을 안겼고 학부형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기부금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명을 했다. 하지만 공납금을 납부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결석 처리했다며 정학을 시인했다.
아이들을 공부시킨다는 합격의 기쁨도 잠시. 입학금과 공납금에 더해 기부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허리가 휘다 못해 꺾일 정도였다. 봉급생활자는 한 달 월급을 다 털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배울 기회가 없었던 부모들에게 자식의 공부는 절체절명의 목표였다.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교육비의 지출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자신은 못배웠지만 자식만은 학교를 보내 가난을 벗어나기를 바랐다.
일제의 악습이 남은 탓인지 해방 후에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뺏는 일이 예사로 벌어졌다. 시국사건으로 정학이나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기부금 때문에 정학을 당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되레 작년부터는 코로나19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교육부의 2학기 전면 등교 방침에 걱정이 앞서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떡여지는 이유다.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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