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입력 2021-05-22 06:30:00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김금희 지음 / 창비 펴냄

상주 경천섬 앞 낙동강 위에 집채만한 오리와 오리알 이 떠 있다. 상주시 제공
상주 경천섬 앞 낙동강 위에 집채만한 오리와 오리알 이 떠 있다. 상주시 제공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김금희 지음 / 창비 펴냄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김금희 지음 / 창비 펴냄

유명인의 이름과 비슷하다는 것은 초면에 존재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험담 한 자락 끌어오자면 이름을 말하면서 수도 없이 가수 태진아를 부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혹시 부인이 옥경이냐는 둥, 선희가 가방을 쌌느냐는 둥 되묻는 건 자동반사적 수순에 가깝다.

"김금희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아침마당"부터 나오면 소설 마니아들은 절망한다. 굳이 "그건 이금희 씨고요"라고 교정할 단계까지 가지도 않는다. 김금희의 소설을 아직 읽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니까. 김금희의 소설을 한번도 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작가 김금희는 전국의 김금희 중에서도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김금희다. 좀더 과감해지자면 2010년대 국내 소설을 말할 때 첫 순위에 오르내리는 작가다. 그가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냈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이은 네 번째 소설집이다. 2019년 이후부터 각종 문예지 등에 발표된 작품 7편이 실렸다.

표제작이면서 2020 김승옥문학상 대상작인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비롯해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크리스마스에는', '마지막 이기성'(2019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기괴의 탄생'(2019 김유정문학상 수상후보작, 2020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깊이와 기울기', 그리고 가장 최근 발표된 '초아' 까지다. 주요 문학상 수상작인 '마지막 이기성',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기괴의 탄생'이 아이돌그룹 센터 자리 차지하듯 중앙에 배치돼 있다.

작가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수창청춘맨숀. 매일신문 DB
작가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수창청춘맨숀. 매일신문 DB

연애가 주된 소재다. (단, '초아'는 연애와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 엄밀히 말해 성공하지 못한 연애담이다. 하긴 성공한 연애담은 로맨스 판타지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기괴의 탄생'에서는 주인공이 존경하는 교수님의 처절한 연애, 와사비같은 무용과 대학원생과 로맨스를 선택했지만 낙동강 오리알처럼 홀로 남겨진, 실패담이 등장한다. 뭔가 꿉꿉한 기운, 후텁지근하게 갑갑한 느낌이다. 흑역사를 떠올릴 때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감정이다. 이불킥 한 번으로는 속이 풀리지 않는 기억들이다.

그런 독자에게 작가는 "누구나 그랬거든"이라고 말해준다. 돌이켜보고 반성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위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아름다움을 정확히 훼손하는 사람들 사이를 그렇게 지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공감이다. 그러면서 해원(解冤)의 과정 없이는 아무것도 잊힐 리가 없다는 메시지를 설파하듯 차분하게 전한다.

다작이면서도 냈다 하면 히트작으로 만드는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초능력 같은 공감 능력 덕분일 것이다. 그의 공감력은 아마도 등단 이후 무명처럼 지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2년 동안 그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문예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게 무릇 소설가의 일이기에. 덕분에 5년 후 독자는 그의 첫 소설집을 만난다. 그게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다.

작가는 작품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주인공 채은경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는 것. 그렇게 좌절을 좌절로 얘기할 수 있고 더이상 부인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라고. 다음은 소설집을 읽은 뒤 만들어 본 오마주 한 토막이다.

"작가님, 그런데요.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 기오성, '깊이와 기울기'의 기동철, 예명 기라성, '마지막 이기성'의 이기성까지. 더 없나? '기'가 반복적으로 들어가는데요. 의미있는 라임인가요?"

"앙골아주입니다."

"아, (문학적 기법인가 본데) 그렇군요."

"안 가르쳐준다는 뜻인데요."

*앙골아주는 '안 알려준다'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 그의 장편 '복자에게'에서 쓰인 주인공 이영초롱의 별명이기도 했다. 소설집에서 작가는 제주어와 부산어, 심지어 문경에서 들은 것 같은 '엉기'라는 말도 유려하게 활용한다.

324쪽, 1만4천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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