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이동후 도산우리예절원 초대 원장

입력 2021-05-06 17:40:40 수정 2021-05-06 20:35:45

"제사상 과일 수나 순서는 사소한 문제…'가가례'도 일제가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만든 말"

이동후 도산우리예절원 초대 원장은 전통예절 바로 알기, 지키기, 알리기에 평생을 헌신해오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이동후 도산우리예절원 초대 원장은 전통예절 바로 알기, 지키기, 알리기에 평생을 헌신해오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흔히들 조율이시(棗栗梨柿)는 제사나 차례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상차림 순서로 압니다. 그런데 제가 공부한 20여 권의 예서(禮書) 가운데 이를 언급한 책은 조선시대 예설(禮說)을 모아놓은 송준필 선생의 육례수략(六禮修略·1932년 간행)뿐입니다. 과일의 수나 순서는 본질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합니다."

우리 예절 바로 알기, 지키기, 알리기에 평생을 헌신해 온 이동후(83) 도산우리예절원 초대 원장은 전통을 익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거짓으로 현혹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을 일컫는 가가례(家家禮)란 말도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만든 말이라고 지적했다. 잘못된 예절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각각인 예절의 대표적 사례가 절하기입니다. 두 손을 포갠 뒤 이마가 닿도록 절하는 사람이 많은데 올바른 예법은 두 손을 무릎 조금 앞에 팔(八)자 모양으로 놓는 것입니다. 갓을 쓴 채 절을 하려면 고개는 들 수밖에 없지요. 명장(名匠)들이 만든 갓은 요즘 600만~700만원씩 하는데 절할 때마다 바닥에 닿아서야 오래 쓸 수 있겠습니까?"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던 그가 전통예절을 널리 알리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8년 발간된 경북도교육청의 '경북교육 50년사' 편찬이었다. 외부 인사 참여 없이 교사 등 자체 인력으로 펴냈다. 특히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교육 현장 사진 400여 점을 어렵게 모아 사료(史料)로서 가치가 높다.

"경북도교육청연구원 연구사로 있을 때였는데 당시 김주현 교육감께서 큰 과제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일제시대 기록은 있는데 광복 이후 기록은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싶어 젊은 교원들을 모아 우리 역사, 정신문화를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훗날 경북도 예절교육연구회로 이어졌습니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출신으로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이기도 한 그는 2001년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뒤 본격적인 계승 활동에 나섰다. 창고로 쓰이던 진성이씨 대구화수회관 옥탑방을 고쳐 아이들에게 예법과 한문을 무료로 가르치는 '범어사랑방'을 열었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부설 전통예절교육원장을 지낸 뒤 2005년에는 도산우리예절원을 창립했다.

"570여 명에 이르는 수료생 대부분은 50~60대 중장년들입니다. 요즘 젊은 층보다는 우리 전통예절에 익숙한 연령대이죠. 하지만 이런 분들도 올바른 예법을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셈이죠. 다행스럽게도 단순한 호기심으로 왔다가 전통문화 매력에 빠져 관련 전공으로 석사,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이어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올해로 17년째를 맞은 도산우리예절원의 전통예절 지도자 과정(1년)은 매주 토요일에, 수료생들을 위한 유교 경전 수업은 수요일에 진행된다. 수업비는 무료다. 대구지역의 각계 전문가들도 재능 기부로 강의한다. 사무실(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558-1, 053-254-2510) 역시 수료생들의 기부로 운영된다. 한복 입기, 절하기, 성인이 됐음을 뜻하는 의례인 관례(冠禮)·계례(筓禮), 제사 지방과 축문 쓰기, 문상 예절 등을 배운다.

이 초대 원장에 이어 송미화, 최진태, 송의호 씨가 2~4대 원장을 맡은 이곳은 2006년부터 대구 각급 학교에서 예절 관련 행사를 매년 열어왔다. 해외 교민과 현지인에게 K-예절(한국의 전통의례와 전통문화)을 알리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3년 스웨덴, 노르웨이 교민 자녀와 입양인의 전통혼례·계레를 시작으로 중국‧몽골‧말레이시아‧카자흐스탄 등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물론 행사에는 현지 한국대사관 등의 도움도 있었지만 비용은 온전히 회원들의 자비로 이뤄졌다.

"코로나19 탓에 지난해는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올해 입학생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예년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여 명을 선발하는 데 그쳤고요. 그래도 수업을 할 때면 늘 즐겁습니다. 제가 이 나이에 사랑받을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허허허. 봉사를 하니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됩니다. 공직자로서 나라의 녹(祿)으로 선조 제사 모시고 자식 공부시켰으니 사회에 그 은혜를 되갚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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