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징계권' 삭제된지 100여일 지났지만…부모 67%·아동 80%는 체벌 금지 사실 몰라
자녀들 "성인돼도 아물지 않는 고통"…전문가 "폭력을 통한 훈육은 있을 수 없는 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집에서 실수로 유리그릇을 깼는데, 이것을 본 부모님이 제 뺨을 때렸습니다. 몇 년이 흘러 학교 과학시간에 온도계를 깬 적이 있었는데, 당연히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낼 줄 알았죠. 그런데 도리어 제게 '괜찮냐'고 묻더군요. 그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어린 시절 '체벌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A(28·대구 서구) 씨는 "이후 이유도 모른 채 사춘기 시절 많이 방황하게 됐다"면서도 "최근 부모님과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면서 화해하고 용서했다"고 말했다.
친권자의 체벌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악용됐던 민법상 '자녀 징계권' 조항이 삭제된 지 100여일이 지났지만,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여전히 많다.
지난 1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민법 제915조항이 63년 만에 삭제되면서 '사랑의 매'가 '아동폭력·학대'가 되는 시대가 됐지만, '자녀 징계권'이 삭제된 사실조차 모르는 부모가 태반이다.
10살 아들을 키우는 B(39) 씨는 "아이가 식당에서 소란을 피워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게 돼 야단을 쳐 바로 잡았다"며 "체벌과 같은 폭력이 아니더라도 벌을 세우는 등 훈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최근 초교 4학년~고교 2학년 자녀와 학부모 600명(300가구)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한 부모들 중 66.7%와 아동의 80%는 부모의 자녀 체벌이 금지됐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징계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높았다. 부모의 60.7%는 '징계권 삭제에도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50.3%는 훈육을 위한 체벌 사용에 동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동복지 전문가는 폭력이 훈육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입법을 통해 체벌이 금지됐지만 무엇보다 예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진숙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자식 관계 자체로도 위계적인데, 폭력을 통한 훈육 방식은 아이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폭력은 다른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체벌은 자녀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고 반감만 되레 키울 수 있다. 과거 한국에선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는 행위가 양육 책임자로서 당연시되는 전통적 문화가 있었지만, 성인과 아이는 동등한 인격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체벌 금지법이 제정됐지만, 체벌은 오랜 관습이기 때문에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부모의 자녀 체벌은 세대 내·간으로 악순환되기에 부모 교육을 철저히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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