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sight] 모병제, 여성 징병 '논의' 더는 피할 수 없다

입력 2021-04-29 06:00:00

현재 90% 이상 남성 징병, 각종 문제점 양산…정치권 논의, 정부가 공론화해야

모병제추진시민연대 이유진 대표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모병제추진시민연대 이유진 대표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모병제 도입 및 군인 처우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유진 대표, 정의당 여영국 대표, 청년정의당 강민진 대표. 연합뉴스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가 최근 뜨거운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휴가 후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부대 내 격리된 병사가 부실한 식사(배식) 실태를 폭로한 데 이어 병사 1인당 1만5천원의 예산이 책정된 생일 특별식(특식)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전해졌다. 육군 51사단 예하 부대, 대구 한 부대(육군 제5군수지원사령부)에서 각각 벌어진 일이다.

1980년대 중반 군 복무를 한 입장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군대가 바깥세상보다 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현역 병사가 받은 불이익과 부당한 대우에 대한 폭로가 어느 정도 사실이겠지만, 군 간부가 부식을 빼돌려 착복하는 형태의 예전 같은 비리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군의 해명처럼 부식 조달 과정이 원활하지 못해서 일시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군의 입장을 두둔하는 건 아니다. 해당 부대의 사후 조치와 해명을 보면 소통이 부족한 느낌이다. 경제적, 이념적 가치가 달라진 세상에서 의무 복무하는 사병들의 사고방식을 우리 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고압적이고 숨기려고 하는 군 간부들의 구태의연한 사고는 진행형이다.

수색대대 복무 때 있었던 일이다. 사격 훈련에 필요한 실탄이 부족했다. 배정된 실탄을 다 소진하고도 훈련이 부족하다고 대대장(중령)은 판단했을까. 그는 군사 훈련이 약한 이웃 부대에 수색대의 특식인 빵을 차에 싣고 가 실탄을 바꿔왔다. 사격 후 탄피만 돌려주면 되니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웃 부대도 골치 아픈 실탄을 소화해야 했기에 서로 잘된 일이었다. 당시 군 동료들은 매우 당연한 일로 여겼다. 강한 훈련만이 만일의 실전에서 이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병사의 생일 특식 타령에 옛날 생각이 난 것이다. '꼰대'로 비난받는 우리 세대는 생일을 모르고 군 복무를 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훈련과 경계 근무, 작업, 축구 등 고단한 군 생활에 아예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다 생일 케익의 값어치가 부족하다고 폭로하는 군대가 되었을까. 생일 특식 값이 1만5천원이든, 1천원이든 생일을 알고 축하해 주는데도 말이다. 기성세대 눈에는 비정상적인 군대로 보인다.

알고 지내는 중대장(대위)을 통해 듣는 요즘 군대는 거의 학교 수준이다. 중대장 스스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사가 된 느낌이라고 한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화하듯 병사의 부모가 아들 생일을 챙겨주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고 전화한다는 것이다.

일과 후나 휴일에 틈만 나면 놀이 삼아 즐기던 축구와 족구는 휴대전화 놀이에 밀려났다는 얘기도 믿기지 않는다. 휴대전화 갖고 놀기가 최고의 휴식이 된 군 생활상이다. 이런 나약한 군대에 어떻게 국가 안보를 맡기나.

부대 담장 너머로 나오면 어떨까. 군 복무자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군 복무자들이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20대 초반의 중요한 시기에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며 온전히 감당했는데도 정부나 기업이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남성 현역 징집률이 높지 않았던 1970, 1980년대 이런저런 이유로 군 면제를 받은 사람들은 공직과 기업 등 사회생활에서 큰 이득을 누리고 있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현역 복무율이 매우 낮은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기업에서도 군 면제자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입사해 빨리 승진한다. 군 복무자는 같은 나이임에도 일찍 입사한 선배보다 먼저 퇴직하는 실정이다. 군대라는 조직 문화에 익숙한 탓에 유연성 부족으로 군 복무자들은 승진 등에서 피해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 사회에서 고착화된 군 복무자들의 박탈감은 이들을 우대하던 군 가산점 제도가 1999년 위헌으로 결론 난 뒤 더 심해졌다. 위헌 판정 후 당시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들의 반발이 심했다는 얘기가 있다. 가산점이 없어지면서 혜택을 받지 못한 아들이 시험에서 떨어지고 동등한 상황에서 딸이 합격했기 때문이다. 각종 시험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월등히 높아진 것도 이때부터다. 남성들이 성 평등을 내세우며 여성 징병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구조가 된 것이다. 남성 복무자들은 입사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차별 당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치권에서 모병제와 여성 징병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여권에서 불을 붙이고 있다.

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모병제 전환과 남녀 의무군사훈련 구상을 밝혔다.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고 남녀 모두 40∼100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해 예비군으로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 수일 만에 2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출산율 하락에 따라 90% 가까이에 이르게 된 남성 징집률 탓에 군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며 성 평등 추구와 여성의 능력이 결코 남성보다 떨어지지 않음을 강조했다. 이에 맞선 '여성 징병 대신에 소년병 징집을 검토해 주십시오'라는 국민청원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최연소 초선인 전용기 의원은 군 가산점제 부활을 제안했고,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군 복무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여권 인사들의 의견은 바람직함에도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 지난 4·7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표심을 잃은 뒤 이들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모병제와 여성 징병은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수시로 논쟁거리가 됐지만 군 당국은 미지근하게 반응했다. 이번에도 국방부는 모병제와 여성 징병에 대해 안보 상황과 군사적 효용성, 국민 공감대 형성 등을 고려해 판단할 사안이라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가 어떤 입장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모병제와 여성 징병을 더는 시기상조로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다. 20대 남성의 표심 달래기라는 정치적인 색채가 다소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의제로 올려 국민과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 사회가 군을 바라보는 시각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젊은 층이 생각하는 군대는 기성세대들이 체험한 군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국방 의무에 대한 인식부터 차이가 있다. 왜 남성만 복무하느냐, 그게 형평에 맞느냐는 물음에 꼬리표가 달리고 있다. 성 평등에 대한 갈등이 여성 징병 문제로 번진 상황이다.

군사 안보 환경도 크게 변했다. 우리 군은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장비와 무기를 현대화했다. 단순한 병사 수에 의존하는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많은 인원이 필요한 DMZ와 해안 경계 근무도 장비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군 당국은 통일 시대를 전제로 한 모병제 논의와 시행을 앞당겨야 한다. 남북이 사실상 핵으로 무장한 가운데 전쟁이 나면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서로가 회복 불능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군인 수 유지에 초점을 맞춘 징병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징집률이 100%를 향해 가면서 병약자 등 부적격 병사 관리에 드는 비용과 손실을 고려하면 전문성을 갖춘 모병제로 하루빨리 가야 한다. 27일 국회에서 정의당, 청년정의당, 모병제추진시민연대, 평화네트워크 주최로 '모병제 도입 및 군인 처우 개선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는데, 이를 추진하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여성 징병도 성 평등 대전환에 직결된 시대적인 과제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불거진 이슈를 마냥 억누를 순 없다.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자는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여성 등을 사회복무 형식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할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2009년에는 국방부에서 여성지원병 제도를 검토하기도 했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 모병제와 여성 징병이 후보 공약으로 채택되는 등 본격적으로 논의되길 기대해본다. 국민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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