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지쳐가는 국민, ‘번아웃증후군’

입력 2021-04-27 11:39:29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존재이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이 언제 끝날지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 금지, 마스크 착용 등 중앙정부의 일률적 지시와 감시 하에 시민들이 숨죽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자영업, 관광업, 일용노동자들은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 생계가 위협받고 있고 의료인, 직장인 등 도시 근로자들은 나로 인해 내가 속한 공동체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최근 외신에 의하면 유럽 각국에서 코로나19 관련 제한 조치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는 새로운 보건지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영국 트라팔가 광장 앞에서 수천 명 시위대가 운집해 코로나19 관련 조치를 해제하라며 항의했다. 시위대들은 '공포가 아닌 자유를 달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옛말에 지도자가 국민 요구에 영합만 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의 손에 망한다고 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률적 규제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짧은 기간 동안 할 수는 있어도 장기간 시행될 경우 그 피로감으로 많은 반발을 초래한다.

최근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 중에 종종 일에 능률도 떨어지고, 매사 의욕이 없고,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짜증을 많이 낸다고 하소연한다. 일종의 번아웃 증후군이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정신분석의사 프로이덴버그에 의해 명명된 심리학 용어이다. 어떤 일에 과하게 열정을 쏟아 부어 자신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됨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한계에 다다라 갑자기 슬럼프, 무기력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에는 지나친 사회적 거리두기, 일률적 규제로 인해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재유행 방지를 위해 방역수칙을 어기는 단체나 국민들에게 징벌적 손해배상과 형사적 책임을 묻고 있다. 특히 코로나에 감염이라도 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동선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자신도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 작은 증상에도 코로나가 아닐까 걱정하는 두려움, 활동 제약이 계속되면서 느끼는 무기력증,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증가로 인해 사회와 개인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백신을 충분히 못 구한 정부가 반성 한마디 없이 '수칙 안 지키면 엄벌, 무관용' 이라고 국민 탓만 할 수 있는 건가.

물론 방역 수칙은 지켜야 한다. 정부가 거리 두기 2주 더 연장을 반복해온 것이 벌써 몇 달째이다. 국민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무조건 단속, 금지 아닌 합리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자칫 내년 이맘때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일률적 규제보다는 국민과 소통을 통해 합리적 공감대가 절실하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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