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그러거나 말거나, 한밤의 뜀박질

입력 2021-04-26 06:30:00

이나리 소설가
이나리 소설가

처음 달리기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였다. 코로나 시국을 맞아 집안에 처박혀 있어야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었던 시기, 나는 엉뚱하게도 등산에 눈을 떴다. 펜보다 무거운 건 절대 들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던 나의 삶에 자발적인 운동이라니.

다 코로나 때문이다. 맡고 있던 강의는 무기한 연기되거나 폐강되었다. 개인적인 일까지 겹치면서 정신건강도 나빠졌다. 이럴 거면 운동이나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산에 올랐다. 혼자서 이어폰을 끼고 정상까지 내딛는 걸음에만 집중한다. 오직 그 생각만 들게 되면 복잡하게 엉킨 머릿속이 되레 비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한 번 재미 붙인 운동은 달리기로 이어졌다. 한 번 뛰면 3km를 채웠다. 매일 뛰지는 않고 주 2~3회 정도는 꾸준히 나갔다. 특히 글 쓰다가 화가 차오르면 당장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숨쉬기 힘들다, 죽을 것 같다, 너무 힘들다. 그런 생각들로 30분가량 뛰고 있으면 글쓰기에 대한 분노는 잠잠해지고 머릿속이 정리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작년 한 해가 특별히 힘들었는데, 운동을 통해서 너덜너덜한 정신건강을 회복해나갔다. 밤마다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나를 보고 "힘들면 차라리 약을 먹어"라는 지인의 따뜻한 충고도 있었다. (실제로 병원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병원 대신 운동을 통해 극복해야 건강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날선 질문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밤마다 뛰러 나갔다.

아침의 뛰기는 건강한 느낌이다. 매우 건강한 누군가의 모범적인 아침 루틴 같다. 그래서 여유가 느껴지는 '달리기'라는 말은 아침에 어울린다. 반면 한밤의 뛰기는 처절하다. 운동장의 조명도 꺼지는 10시 이후, 동그란 트랙을 죽기 살기로 뛴다. 여유 따윈 없다. 나의 팔다리는 고요한 밤공기를 휘적거린다. 이 처절함은 달리기보다 '뜀박질'에 더 어울린다.

나는 아침 달리기보다 한밤의 뜀박질에 더 가까웠다. 투박하게 땅을 딛고 박찬 후, 이내 가라앉는 나의 몸짓은 확실히 안쓰러운 데가 있다. 그토록 처절하게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한계를 넘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엔도르핀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엔도르핀을 맛보기 위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딘다. 순서를 조금 바꿔서 말하자면,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괜찮아지는 순간이 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일을 버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인생이라는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는 힘은 그 지점에 있다. 그래서 나는 달린다, 라고 멋있게 말하고 싶지만 사실이 아니다. 내 뜀박질은 그 정도로 거창하지 않다. 나가서 뛰는데 그 정도의 각오가 필요할까. 뛰고 나면 기분이 좋다. 그거 하나만 알면 된다.

밤마다 뛰어다니면 좋은 점도 있다. 저 멀리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는 게 보일 때 주저하지 않고 뛸 수 있다. 그 정도면 인생에 꽤 유용한 능력 아닐까? 그러니까, 다들 당장 밖으로 나가 뛰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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