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기어가 된 조선유학자, 윤휴
이덕일 지음/ 다산초당 펴냄
"세상의 밝은 이치를 어찌 주자 혼자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인가?"
조선 숙종 6년(1680년) 서인이 남인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경신환국으로 말미암아 당대 최고의 유학자 윤휴(尹鑴)는 소주와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 배경에는 주자를 절대적 가치로 여긴 서인들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렸고, 게 중에서 주자학을 통해 신분 질서를 강화하고 양반 사대부의 특권을 굳히고자 했던 송시열의 사주와 모략이 크게 작용했다.
윤휴의 죄는 세 가지였다. 첫째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주자의 학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보적 학문세계를 구축하고자 한 죄, 둘째 서인 당파의 당론이었던 북벌불가에 저항하며 조선을 동아시아의 맹주로 만드는 부국강병을 도모한 죄, 셋째 사대부 계급의 특권을 타파하고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넘어선 세상을 실현하려 한 죄로 그의 이름은 340년간 조선 최대의 금기어가 됐다.
인조의 남한산성 치욕을 되갚겠다는 효종의 북벌론 대세에 대해 당시의 집권세력은 이중적으로 처신하고 있었다. 말로는 북벌을 외치면서도 내심으로는 북벌은 꿈도 못 꾸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처신이었다. 이런 사대부 대신에 윤휴가 주목한 세력은 백성이었다.
"신이 일찍이 생각하기를 지금 사대부들은 그 마음속에 이해가 엇갈리고 보고 들은 것이 지식을 가리기 때문에 의논이나 행동이 본심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민들은 비록 무식해도 하늘이 부여한 품성이 어둡지 않아 지극히 어리석은 듯 하면서도 신령하고 정성을 다하면서 신의가 있습니다."
이렇듯 윤휴는 이중적인 사대부 대신 백성들에게 북벌의 희망을 걸고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680년 5월 20일 사약을 갖고 온 금부도사에게 윤휴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 있는가?"를 끝으로 사약을 마셨다고 야사는 전하고 있다.
비록 벼슬은 없었지만 거대 집권당인 서인에 맞설 수 있는 학문적 권위로 윤휴는 현종 즉위년에 발생한 기해(1659) 예송논쟁 때 송시열과 맞서자 사방에서 비난이 들끓고 절교 편지가 잇따랐지만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다만 시대를 개탄할 뿐이다"며 초연했던 인물이다.
책은 한국사 해석의 새로운 관점과 지평을 연 역사학자 이덕일 씨가 2011년 출간한 '윤휴와 침묵의 제국' 개정 증보판이다. 39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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