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안과 밖, 삶과 죽음을 가르다
장벽의 시간/ 안석호 지음/ 크레타 펴냄

'장벽'의 존재 이유는 특정 지역의 사람과 물자 등 교류를 단절하는 데 있다. 누군가 잠재적 위협 세력을 규정하고 자신과 이들을 분리하려고 장벽을 만든다. 장벽이 생길 때 사람들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장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장벽을 만든 자는 이를 자신이 만든 질서와 경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장벽은 더 높게, 더 튼튼하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장벽을 넘으려는 의지도 쉽게 꺾이지는 않는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장벽 주변엔 사람이 모이고 독특한 문화와 경제가 형성된다. 특수한 산업과 도시가 발달하기도 한다. 이처럼 장벽은 주민들의 생활과 경제를 바꾸고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든다.
이 책은 20세기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 장벽이다.
이들 장벽은 건설 주체는 다르지만 만들어진 배경에는 미국과 소련, 영국, 독일,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와 역학 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미국과 소련의 냉전 등 유럽과 아시아, 중동,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가장 굵직한 사건들과도 연관돼 있다. 위기와 갈등의 순간에 탄생한 이들 장벽은 때론 갈등 확산을 막고 충돌을 막았지만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벽, 그 되풀이되는 장벽의 시간을 통해 누가 현명했고 누가 어리석었는지, 또 그들은 우리 삶의 궤적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살펴본다.
"역사상 이렇게 폐쇄적인 장벽이 또 있었을까. 지구상에 수많은 장벽이 만들어져왔지만 남북한 사이에 만들어진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와 같이 양쪽을 철저하게 단절한 장벽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장벽을 세운 주체는 어떤 이유에서든 이를 통해 접촉과 이동을 차단하려고 한 것은 맞지만 비무장지대처럼 완벽하게 그 목적을 달성한 사례는 드물다."(4장 '가장 폐쇄적인 장벽-DMZ' 중에서)
"미·중 무역 전쟁과 코로나19 창궐 등으로 국제 질서가 요동친다. 세계 곳곳의 국경에 새로운 장벽이 생겨나고 기존의 장벽들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에필로그 '팬데믹 시대의 장벽' 중에서). 384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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