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판 '청춘 신화' 주인공 온달과 평강, N포세대 위로하다
방송 중 주인공 교체는 드라마로서는 존페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그러나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좋은 예가 됐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능케 했고, 그 시사점은 뭘까.
◆왜 지금 평강인가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 '온달설화'를 기반으로 창작됐다는 고지와 함께 시작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그 설화는 다름 아닌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다. 울보 평강공주에게 왕이 자꾸 그러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농담을 했는데, 성장한 평강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며 궁을 떠나 온달과 혼인하고 그를 대장군으로 성장시킨다는 이야기다. 워낙 드라마틱한 이야기인데다, '온달설화'로 기록되어 있어 많은 이들은 이게 그저 이야기일 뿐 실제 역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필자와 인터뷰한 고대사 전문가인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그것이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라고 말한다. "역사 속 평강은 굉장히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온달설화가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기승'은 사실상 온달 이야기가 아닌 '평강설화'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즉 평강의 능동적인 역할에 의해 온달이라는 장군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걸 이 이야기는 담고 있다는 거죠."
물론 온달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드라마 속에서 온달은 순노부 족장이었던 온협(강하늘)의 아들로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평민이었다는 것. 하지만 당시로서는 공주와의 혼례라는 파격적인 선택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가 비범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혼례 후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부마로서 편하게 여생을 마칠 수도 있었지만 온달은 신라가 가져간 고구려 땅 수복을 위해 전쟁에 나갔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이도학 교수는 그래서 '온달설화'의 이야기에서 평강과 온달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메시지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온달설화의 앞부분 절반을 평강이 차지할 정도로 본래 이 설화는 평강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달이 뜨는 강'이 굳이 온달설화에서 평강을 찾아낸 건, 다분히 현재 대중들이 요구하는 능동적인 여성상에 부합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평강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모든 분야(?)들에 주도적인 인물이다. 기억을 잃은 채 염가진(김소현)이라는 살수로 성장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면(修身), 온달(나인우)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촌부로 살려던 그에게 대업의 꿈을 심어주고 대장군으로 성장하게 했으며(齊家), 공주로 궁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 평원왕(김법래)을 무력하게 만드는 제가회의와 일대 정치권력의 대결을 벌이고(治國), 고구려 땅 회복이라는 대업(平天下)을 향해 나간다.
이를 현대적으로 보면, 일의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사랑도 쟁취하며 나아가 사회에서의 지위는 물론이고 커다란 꿈도 펼쳐나가는 여성상이 아닐 수 없다. 평강이라는 고구려 인물이 '달이 뜨는 강'이라는 사극으로 지금 현재 재탄생하게 된 이유다.

◆청춘들의 현실과 꿈이 투영된 '달이 뜨는 강'
'달이 뜨는 강'에는 또한 지금의 이른바 N포세대로 불리는 청춘들의 현실과 꿈에 대한 이야기도 투영되어 있다. 드라마 속 온달과 평강은 애초 꿈 자체가 꺾인 인물들이었다. 온달은 역적으로 몰려 마을 사람들이 도살당하고 아버지마저 죽은 후, 살아남은 순노부 사람들과 '귀신골'이라는 심산유곡에 숨어 들어와 한평생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려 하는 청춘이다. 평강은 기억을 잃은 후 천주방에서 살수로 키워져 자칫 아버지 평원왕마저 살해할 뻔했던 청춘이었다. 이렇게 드라마가 해석해낸 평강과 온달은 어쩔 수 없이 '바보처럼 살아가야 할' 지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들이 다시 힘을 키우고 성장해 꿈을 향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억을 되찾아 궁으로 돌아오지만, 제가회의 수장인 고추가(귀족 칭호 중 하나) 고원표(이해영)의 계략에 의해 다시 귀신골로 쫓겨난 평강은 그 곳에서 온달과 함께 원대한 꿈을 향한 행보를 시작한다. 결국 북주의 침략을 막아내는 전공을 통해 평강과 온달 그리고 순노부 사람들은 다시 옛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
'달이 뜨는 강'은 이처럼 현 청춘들의 현실과 꿈이 투영된 평강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사극의 장르적 영역들을 보여준다. 고구려라는 시대적 특징이 투영된 전쟁과 정치 사극의 면모를 그리면서 동시에 평강과 온달의 성장드라마와 더불어 청춘 멜로까지 담아낸다. 이처럼 다양한 재미 요소들은 '달이 뜨는 강'이 다양한 세대의 시청층을 폭넓게 확보하게 된 이유가 된다.

◆주인공 교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좋은 예
'달이 뜨는 강'은 드라마 외적으로도 좋은 예가 된 사극이다. 즉 드라마 방영 6회 만에 온달 역할을 맡았던 지수의 학교폭력 논란이 터짐으로써 '주인공 교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잘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바꾼 사례라는 것.
보통 이런 사태가 터지게 되면 '조기종영' 수순을 밟고 일정 기간 결방이 불가피한 게 일반적이지만, '달이 뜨는 강'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빠르게 주인공을 나인우로 교체했고, 결방 없이 지수 분량을 나인우로 대체해 찍어 방영했다.
물론 이런 결정과 과정에는 다른 출연자들과 스텝들의 양해와 희생이 필수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했고, 몇몇 출연자들은 추가 촬영에 '노 개런티'로 임함으로써 다소 고개 숙인 촬영장 분위기를 활기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은 결국 시청자들의 응원과 지지로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이 사태가 '달이 뜨는 강'의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들 또한 피해자인데다, 무엇보다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재촬영을 통해 작품을 마무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그 진심이 통했던 것.
흥미로운 건 새롭게 투입된 나인우가, 갑작스러운 출연의 어색함을 촬영을 통해 조금씩 적응해가고, 배우로서의 성장 또한 보이는 과정이 '달이 뜨는 강'의 평강과 온달의 이야기와도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평강 역할을 연기한 김소현은 극 중에서 평강이 온달을 성장시키듯이, 새로 투입된 나인우와 합을 맞춰 배우로서의 그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처음에는 그저 순박하게만 보였던 나인우는 그래서 점점 액션부터 감정 연기까지 깊어져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달이 뜨는 강'이 지금껏 보지 못했던 굉장한 스토리를 담은 사극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평강과 온달을 끌어와 지금의 청춘들의 현실과 꿈을 투영해내려 했던 그 재해석이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만큼 주인공 교체라는 위기를 넘는 드라마 외적인 이야기가 드라마틱한 울림을 만든 작품이 됐다.
이제 앞부분 6회마저 다시 나인우로 재촬영을 하고 있는 '달이 뜨는 강'은 글로벌 OTT에 판권이 판매되어 전 세계 190개 국에 수출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꿈마저 포기했던 청춘이 대업을 꿈꾸고 실현해가듯, 위기상황에서 이를 극복한 드라마는 전 세계인들이 보는 한류 콘텐츠로 서게 됐다. 어려움이 있어도 멈추지 않은 강이 있어, 그 위에 달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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