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

입력 2021-04-06 10:07:32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얼마 전에 아는 의사의 소개로 50대의 남성 환자가 찾아왔다. 몇 달 전부터 아래 턱과 양쪽 볼 부근에서 뻐근한 정도의 둔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입에서 끈적끈적한 이물질이 생기는 것 때문에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무척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경부 통증과 두통도 가끔 나타나기 때문에 목과 머리 MRI사진도 찍어보고 종합신체검사도 받아보았지만 어떤 이상 소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증상이 계속되다 보니 환자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이 애매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와 마주할 때는 우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진찰을 시작해야 한다. 진찰하는 동안에 환자의 병력을 들으면서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환자의 행동이나 신체적 특징, 그리고 습관이나 심리적 상태를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환자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 문제는 이를 깨물고 있는 습관이었다. 평소에도 이를 종종 깨물고 있었지만 수 개월 전부터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를 더욱 깨물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 업무와 관련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하루에 커피를 10잔 이상 마실 정도로 카페인에 많이 노출돼 있었다. 오래 전부터 고혈압치료제도 복용중이었다.

이런 진찰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우선 아래 턱과 양 볼에서 뻐근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이를 깨무는 습관과 관련될 수 있고, 입에서 끈적끈적한 이물질이 생기는 것은 구강건조증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강건조증은 스트레스, 이깨물기, 고혈압치료제 장기복용 등과 모두 관련될 수 있다. 커피의 과다 섭취로 중추신경계가 흥분상태에 있기 때문에 모든 신체반응이 예민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도 추가했다. 이런 설명을 들은 환자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게 됐다고 하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유형의 환자에게는 별도의 처방이 필요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명해주는 것 그 자체가 환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환자의 습관이나 행동의 교정을 통해서 치료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도 구강내과에서 실시하는 이와 같은 상담과 설명, 혹은 습관수정이나 행동요법에 대한 수가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병원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의료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매우 미흡한 경우에 속하는 환자라고 하겠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환자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특히 구강이나 얼굴에서 나타나는 애매한 증상 때문에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는 환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에서 환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 그렇다보니 이것이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환자들은 대개 신체적으로, 행동학적으로,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여러 전문가의 도움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현행 의료보험체계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매우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애매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히 이뤄지길 기대하지만,지금은 그저 의사의 사명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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