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권력에 대한 신상필벌은 국민의 몫

입력 2021-03-29 06:08:56 수정 2021-03-29 06:19:08

노동일 경희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 접종 해프닝은 민망하다. 문 대통령의 접종 모습을 공개한 청와대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런 퍼포먼스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이거나 최소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물론 일각의 백신 바꿔치기 루머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드러나는 건 단지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는 정도를 넘어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도 숨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원수의 '솔선수범'조차 터무니없는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게 민망하다는 얘기다. 오죽 불신이 깊으면 그 같은 극단적 음모론이 소비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렇다.

더 민망한 것은 정부의 좀스러운 대응이다. 국민의 의구심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간호사가 주사액을 뽑은 후 가림막 뒤로 들어갔다 나오는 등 외국 지도자들 접종 장면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연출한 때문이다.

정부가 불필요한 가림막과 간호사의 행동을 충실히 설명하고 접종 장소에 설치된 CCTV를 공개했다면 가짜 뉴스는 즉시 사라졌을 것이다. 안개처럼 스멀대는 가짜 뉴스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진짜 뉴스라는 햇빛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대신 수사 의뢰로 대응하면서 CCTV 동영상은 없다는 해명만 내놓고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불신은 단순히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1호 참관인' 아닌 '1호 접종자'로 담대하게 나섰다면 어땠을까.

국민이 박수와 함께 대통령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백신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등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각각 94세, 99세인 영국 여왕 부부나, 78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뜻 백신 접종에 나선 이유가 그것이다.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문 대통령이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을 거라는 게 솔직한 의구심이다.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는 여당 의원의 항변이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드러낸 말일 것이다.

80%에 육박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단순히 임기 말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급전직하다. 부동산 관련 민심 이반 등 많은 원인이 중첩된 게 사실이다. 그 같은 요인을 넘어 현 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는 게 백신 해프닝이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는 흘려 버리고 뒤늦게 진노했다는 메시지를 내놓거나 뒷북 수습에 나서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1년여를 방치한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이어 사퇴가 예고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적기를 놓쳐 버렸다. 장관으로 영이 설 리도 없거니와 조롱의 대상이 되며 대통령의 권위와 지지를 떨어뜨릴 뿐이다. 리더십의 요체인 신상필벌이 작동하지 않는 정부를 국민이 지지할 리 만무하다.

국민의 마음이 정권과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은 청와대의 무감각이다. 이미 리더십 발휘 시기를 놓쳤다면 굳이 공개 접종 행사를 할 이유가 없다. 생중계도 아닌 녹화 동영상 제공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할 일도 아니다.

질병관리청의 수사 의뢰 역시 만류했어야 마땅하다. 퍼포먼스 기획 실패가 의혹의 원인임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로 국민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야 한다. 부동산 관련 국민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부동산 적폐'로 규정하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4년 내내 계속된 적폐 몰이에 신물이 난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당장 문제가 되는 3기 신도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급조된 공급 대책이다. 먼저 관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범죄를 단죄하는 게 순서다. 전 정권부터 시작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파헤치고 제도 개선을 하는 건 그다음이다. 과거 정부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잘못을 물타기하는 수법은 이제 통하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잘 모르는 모양이다.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하는 권력에 대한 심판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국민의 신상필벌이 따라야 한다. 국지적이지만 마침 선거가 임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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