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빠지는 대구 청소년] 보드게임 카페서 모바일 고스톱, 자금 마련 위해 '렌트탕'
친한 학교 후배 고용해 청소년 끌어들이는 도박 사이트 운영진
SNS 일일이 통제할 수 없어, 어른부터 도박과 게임 개념 알아야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일종의 놀이처럼 퍼지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놀이터, 보드게임 방에 모여 도박을 놀이로 즐기고 있으며, 게임처럼 가입이 쉽고 적은 돈으로 베팅을 할 수 있는 도박 사이트들이 난무해 청소년을 유혹한다.
◆심각한 청소년 도박
온라인 도박으로 두 달 동안 200만원을 잃은 고등학생 A군은 요즘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렌트탕'에 혈안이다. 렌트탕은 자신의 오토바이를 누군가에게 빌려준 뒤, 고의로 사고를 나게 해 수리비용을 과하게 받아내는 수법이다.
렌트탕 피해자가 수리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고 해도 별 걱정이 없다. A군의 친한 선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미성년자에게 불법으로 돈을 빌려주는 일명 '개인돈업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선배에게 연결시켜 수리비를 챙길 수 있고, 선배는 비싼 이자를 받아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또래인 B군은 요즘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친구들과 보드게임 카페에 모여 모바일 고스톱을 한다. 하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쌓인다. 3만원부터 걸었던 판돈은 잃으면 잃을수록 15만원, 30만원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쌓인 빚만 100만원.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돈을 안 갚을 수도 없다. 이미 도박으로 엮인 또래 집단이 형성돼 있어 돈을 갚지 않는다면 자칫 왕따나 폭행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해 B군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고자 도박에 계손 손을 댄다.
학교 밖 청소년인 C군은 본인을 '도박계의 큰 손'으로 부른다. 돈을 땄는데도 환전을 안 해주는 일명 '먹튀' 불법 도박 사이트를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C군도 숱한 '먹튀'를 당해왔다. 그럴 때마다 사이트 측에 전화해 항의를 하는 등 경험을 겪으며 '먹튀' 없는 사이트를 발굴해낸 C군은 엄선한 사이트 주소를 친구들과 공유한다. 친구들은 C군에게 주소를 받고자 안간힘을 쓴다.
◆청소년 도박 이끄는 사이트 활개
온라인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도박 사이트의 조직화된 구조도 한 몫 한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도박에 쉽게 접근하도록 초기 자본을 빌려주는 등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는 도박 사이트 역시 활개를 치고 있다.
대다수 사이트 운영진은 신규 가입자 모집을 위해 우선 학교 후배인 청소년을 모집책(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모으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 고용한다. 그런 뒤 모집책이 가입시킨 사람 수 혹은 그 가입자가 사이트에 충전하는 금액에 따라 돈을 나눠주며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 모으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B군은 "운영진 후배는 모집책으로 활동하면서 도박 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성과가 좋으면 동경하던 선배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모집책은 주변 친구들에게 초기자본을 빌려주거나 게임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박을 전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말했다.
도박에 필요한 자금도 청소년들이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구조다. 소셜네트워크(SNS) 상에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대출을 해주는 일명 '개인돈업자'가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대출', '급전' 등만 검색해도 접근이 가능한 개인돈업자에게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 계좌번호만 알려주면 돈은 금방 빌릴 수 있다. 개인돈업자들 역시 사이트 운영진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후배인 모집책을 고용해 돈을 빌릴 청소년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돈을 갚지 못했을 때 업자에게 넘긴 '개인정보'가 협박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업자들은 "개인정보를 유출해 도박 사실을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개인정보를 악용해 휴대전화를 불법 개통해 거액의 대출을 받기도 한다.
C군은 "결국 협박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돈을 갚기 위해 중고거래사이트에서 허위매물로 사기를 치거나 학교폭력으로 돈을 갈취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책 마련 쉽지 않아
청소년 도박은 심각해지지만 대책 마련은 어렵다. 청소년들의 휴대전화 사용, 개인 SNS를 일일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이버 도박을 추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 역시 사이트 운영진, 개인돈업자를 찾아내기 위해 청소년들의 SNS를 압수하는 것은 인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어른들부터 도박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도박 접근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다수 청소년들은 친구가 도박을 하고 있는 걸 보고 마치 하나의 게임인양 발을 담그게 된다. 게임인지 도박인지 경계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 사이트 주소와 돈을 빌려주고 받으면서 도박에 점점 빠져드는 것이다"며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이 도박을 하고 있어도 그저 게임을 하고 있는 줄 아는 게 문제다. 주변 어른부터 사이버 도박과 게임이 어떻게 다른지, 접근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훈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대구센터장은 "자기조절, 통제가 미숙한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도박 예방교육만으론 도박을 근절할 수 없다"며 "교육청이나 시민단체와 연계해 교사, 학부모들에게 도박 인식 증진 교육과 쉽게 노출된 환경에 대해 적극 알릴 예정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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