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참아야 경비원 할 수 있대요"…무용지물 된 '괴롭힘 방지법'?

입력 2021-03-28 17:25:25 수정 2021-03-28 18:37:22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경비원 등 근로자에 대한 괴롭힘 금지사항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는 법 개정
대구시도 지난달 2일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개정
아파트 경비원들 '별 차이 없거나 없을 것'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단지 내 재활용 분류장에서 경비원 A씨가 분리수거 작업을 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매일신문DB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단지 내 재활용 분류장에서 경비원 A씨가 분리수거 작업을 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매일신문DB

대구 한 아파트 경비원 장모 씨는 주민들의 부당한 요구에 속상할 때가 많다. 장 씨는 "침대 버리는데 얼마냐고 주민이 묻기에 구청 조견표대로 6천원이라고 했는데, '직접 침대를 가져가라, 왜 6천원이냐, 중간에 해먹느냐'고 했다. 맞아도 참는 게 경비원이고,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다고 교육받아서 그저 참기만 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 갑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후 대구시도 지난달 2일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했다. 지난 1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동주택 관리규약에는 경비원 등 근로자에 대한 괴롭힘 금지사항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 대구시도 관련 사항을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담도록 조치했다. 또 동구·북구를 제외한 나머지 6개 구·군도 관련 조례를 제정한 상태다.

하지만 경비원들은 아파트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가 고용 계약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불만을 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경비원 대부분은 2~3개월 단기계약이어서 고용환경이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2019년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응답한 경비원 3천150명 중 94.1%(2천965명)가 1년 이하 계약이고, 이 중 21.7%(685명)는 3개월 계약 등이었다. 정은정 대구노동세상 대표는 "해고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보니 용역업체가 근로계약을 2~3개월, 심지어 1개월 초단기로 맺기도 한다"고 했다.

관리소장, 입주민, 입주민대표회의에서 경비원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 나오면 바로 계약이 종료된다. 경비원과 고용계약을 맺는 용역업체는 아파트와의 계약 유지를 위해 입주민 민원을 발생시키는 경비원과의 재계약을 원치 않는다.

수성구 한 아파트 경비원 이모(67) 씨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서 계약 당사자인 입주자대표나 용역업체에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 대부분이 만 55세 이상이어서 2년 넘게 근무해도 기간제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관련법상 계약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만 55세 이상 근로자는 예외이기 때문이다.

대구아파트경비노동자협회 관계자는 "불이익을 당해도 상담·구제받을 수 있는 통로도 노동청·협회 외에는 없다"면서 "대구시가 나서 권리 구제 상담 사업을 하면서 경비원이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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