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바타 할머니의 집에 얹혀 살면서 그의 이혼 위자료로 생계를 꾸려간다. 필요한 생필품은 적당히 훔쳐서 나눠 쓴다. 한 지붕 아래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이들은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다.
영화는 저마다의 비밀과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마치 한 가족처럼 조화로운 모습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관계성을 밀도 높게 그려내 2018년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됐다.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에 이어 21년 만의 경사로 일본 영화사에 또 하나의 굵은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일본 내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정치권과 우익 세력들은 크게 반발했다.
영화의 원제인 '만비키(좀도둑) 가족'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사회의 어두운 밑바닥을 조명해 국가 이미지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다. 당시 아베 총리는 축전은커녕 이 영화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시아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하자 일본 매체들은 영화보다 한국의 '반지하'를 조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자기 허물은 감추고 남의 것은 보란 듯 까발리는 이상 심리다.
최근 중국에서도 한 영화감독 때문에 시끄럽다. '노매드랜드'로 골든글로브상 작품상·감독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을 둘러싼 중국 내 배척 분위기 때문이다. 베이징 태생의 자오 감독은 신세대 감독으로 중국 내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런데 중국 사회과학아카데미 연구센터가 "아직 자오를 치켜세울 때가 아니다"라는 SNS 논평을 내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자오 감독 관련 인터넷 검색이 모두 중단되는가 하면 4월 23일 '노매드랜드' 중국 개봉 일정마저 불투명해졌다. 과거 자오 감독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사태의 발단이다. 자오가 2013년 한 영화 잡지에서 "10대 때 유학길에 오를 당시 중국은 거짓말투성이의 나라였다"고 말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이상한 사회 분위기와 왜곡된 세태가 빚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이나 '도가니' '택시운전사' 등 영화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우리 관객들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이것 또한 '한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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