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지지(支持)한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단체의 주의·정책·의견 등에 찬동하여 이를 위해 힘을 씀'이다. 혈연관계에서 지지는 다분히 맹목적이다. 내 편과 네 편의 구분이 견고하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 않은가. 사회적 관계에서 지지는 '신념의 공유'다. 신념은 공의로움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공공의 선(善)에 부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지지는 올바른 국가의 지향점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따르고,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런데 공공의 선을 지향하며 신념을 공유한다고 믿었던 정당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자기모순적 언행을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 잘못에 대해 귀 기울이고 반성하며 응당한 질책과 처벌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올바르다. 정권 창출을 목표로 뭉친 정당도 마찬가지다. 내부의 비판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않고 변절자 낙인을 찍어 밖으로 내쳐버린다면 속된 말로 조폭 양아치보다 나을 게 없다. 이들은 두목에 대한 지지 즉, 신념의 공유가 아니라 의리로 뭉친 집단들이다. 말이 좋아 의리라고 할 뿐, 얄팍하기 그지없는 이해관계 속에서 의리라는 그럴듯한 껍질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의리를 내세운 이상 두목에 대한, 조직에 대한 비판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 행위는 배신이며, 처절한 복수를 통해 짓밟아 놔야 조직의 유지와 조직원 관리가 가능한 게 그들의 생리다.
그런데 요즘 정치 상황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특정 정당과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는 조폭 두목에 대한 의리 수준조차 넘어선 듯하다. 혈연관계의 맹목적 지지보다도 끈끈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의 방에 갇힌 채 그 나름의 논리를 세워 신념의 공유를 좀처럼 깨려 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전혀 상관없다. 불리한 정보는 조작으로 치부해 버리고, 근거가 명확한 비판에 대해선 '너희도 똑같지 않았느냐'고 퉁치는 식이다.
박병석 국회의장 직속 자문기구인 국회 국민통합위원회 경제분과위원회가 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DB) 등록 전문가 1천8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주원인으로 63.1%가 정치적 원인을 꼽았다. 이유는 지지와 편 가르기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편 가르기가 되면 앞뒤 말이 안 맞거나 내 편과 네 편에 적용하는 법적·도덕적 기준이 다른 것쯤은 문제가 안 된다. 어차피 내 편과는 상종할 수 없는 부류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지가 아니라 추종이다.
특히 인터넷 댓글은 이런 확증편향,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편 가르기 대결장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다. 그런 우아하고 고차원적인 대국이 아니라 저잣거리 패싸움에 구경꾼들이 모여 욕지거리하는 형국이다. 뜯어말려야 할 당사자들은 되레 싸움을 부추긴다. 여기서 지면 마치 구경꾼들이 망할 것처럼. 어느새 구경꾼들은 목적도 잊은 채 아귀다툼의 당사자가 돼 있다. 편 가르기 싸움이 끝난 뒤 구경꾼들이 씁쓸히 돌아서면 승리는 남아서 웃는 자들의 몫일 뿐이다.
정부·여당이 잘못했고 야당이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민의 날 선 비판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치하는 자들은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대신 추종을 요구할 것이다. 시민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한 나라에선 그 체제가 비록 자유민주주의라 할지라도 언제든 이념으로 포장된 독재의 감옥에 갇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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