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의 역사를 담은 보물
"어두운 눈으로 간신히 이 책을 썼으니 부디 잘 간수하여라."
음식디미방의 끝에 저자 장계향이 쓴 당부의 말이다. 책을 다 쓴 후 이런 당부의 말을 붙여 놓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책은 원래 영해 인량리 마을에 살던 재령이씨 존재 종가에 소장되어 있다가 경북대에 위탁되었다. 1960년 1월에 경북대 김사엽 교수가 당시의 총장 고병간 박사 송수기념논총에 이 책을 소개하는 글과 본문 사진을 처음 실었다. 그 후 6년 뒤 손정자 교수가 원문을 현대국어로 옮겨 그 내용을 널리 알렸다. 1980년에 황혜성의 해설문이 들어간 영인본이 나왔고, 2003년에 경북대 출판부에서 필자가 새로 판독한 본문을 넣어 원본 크기로 원색판 '음식디미방'을 출판하였다. 음식디미방이 경북대 도서관에 들어옴으로써 자료 접근성이 높아져 학계에 널리 알려졌고, 이로써 그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여러 학자들이 이 책을 활발히 연구함으로써 저자 장계향의 업적을 드높였으니, 책을 잘 보존하라는 저자의 당부를 실천한 셈이다.
음식디미방이 학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KBS 역사스페셜의 '300년 전 여성 군자가 쓴 요리백과 음식디미방'이란 60분짜리 방송(1999년 12월 18일) 덕분이었다. 2005년에는 MBC의 보물찾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글쓴이도 두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이 책의 내용과 가치를 해설하였다. 두 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실제 조리법을 배워 보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음식디미방은 책 이름이 두 개다. 책의 앞표지에는 '閨壼是議方'(규곤시의방)이라 씌어 있고, 본문 첫머리에는 '음식디미방'이라 써 놓았다. 앞표지의 한자 이름은 저자 장계향의 부군 이시명 혹은 아들 이현일이 붙인 것으로 본다. 본문 첫머리의 '음식디미방'은 장계향의 친필이므로 저자 본인이 붙인 이름이다. 저자 본인의 뜻을 존중하고, 이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한 '음식디미방'이 이 책의 정식 서명이 되었다.
음식디미방이 소중한 까닭은 무엇인가? 첫째, 이 책에 실린 145개의 조리 방문들은 350년 전 우리 조상들이 무슨 재료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는지를 알려 준다. 둘째, 이 책에 담긴 음식 방문들은 한국 음식 조리법의 원형이며, 정통성을 지켜가는 샘물과 같다. '글로벌'과 '융합'의 큰 변화 속에 놓여 있는 오늘날의 세계적 흐름 속에서 이 책의 조리법은 한식의 맛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원형질과 같다. 셋째, 음식디미방에는 17세기 한국어의 생활 언어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음식디미방은 일상생활어를 그대로 적은 것이어서 한문 번역서에 없는 당시의 우리말이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책에는 다른 음식조리서에 없는, 저자 장계향의 간곡한 당부의 글이 있다. 후손들에게 이 책을 떨어지게 하거나 가져가지 말고 오래오래 잘 보존하라고 했다. 60여 년 전에 존재종가와 두들마을 석계종가 후손들이 이 가르침을 잘 실천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장계향의 당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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