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학원 뺑뺑이 없는 세상

입력 2021-03-04 18:40:13 수정 2021-03-05 06:07:00

지난 1일 오후 대구 시내의 초등학교 정문에 코로나19 극복과 대면수업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1일 오후 대구 시내의 초등학교 정문에 코로나19 극복과 대면수업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장성현 경제부 차장
장성현 경제부 차장

아이는 망설임 없이 교문 안으로 들어선다. 학생회장 선거 유세로 떠들썩한 아이들을 지나 그저 성큼성큼 걸어간다. 학교 앞까지 손잡고 온 아빠 얼굴 한 번 돌아볼 법하건만, 그저 쌩하니 떠난다. 괜히 서운하다.

학교 정문에는 입학을 축하하는 오색 풍선 아치가 며칠째 서 있다. 작은 등에 매달린 분홍색 가방이 시야에서 꽤 멀어진 뒤에야 발길을 돌렸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함께한 등굣길. 앞으로 몇 년간은 매일 마주쳐야 할 일상이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맞벌이 부모들은 전쟁 같은 3월 한 달을 보내야 한다. 오후 1시, 하교 시간에 맞춰 돌봄 대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과후교실도 오후 2, 3시면 끝나고,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돌봄교실은 선발 인원에 제한이 있다.

결국 돌봄 공백을 막으려면 사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입학식 날 아이의 목에 키즈폰을 걸어주고 가장 먼저 알려준 것도 학원 등하원 차량을 타는 장소였다. 아이가 교문으로 들어서는 날부터 '학원 뺑뺑이'의 시간이 시작되는 셈이다.

부모 중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한다고 아이가 쳇바퀴 신세를 면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혼자 놀도록 뒀다가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학원을 순례하는 이유가 된다. 심지어 선행 학습을 하는 학원에 보내려 아이에게 과외 교습을 시키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진다.

부모들은 '학원엔 우리 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많으니까' '보는 눈이 많으니까 함부로 하진 못할 것'이라는 생각, '학원에 있으면 뭐라도 하나 배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아이를 학원으로 등을 떠밀며 죄책감을 달랜다.

그러나 학원이라는 환경도 완전히 안심할 건 못 된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충격적인 소식. 한 교습소에서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강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얘기였다.

아이들은 몸을 바짝 붙이거나 자신을 무릎 위에 앉히는 등의 행동이 불쾌했다고 털어놨고, 놀란 부모들이 강사를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는 진행 중이고, 아직 정확한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모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엔 충분하다.

이런 상황을 겪다 보면 왜 우리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최저 수준인지 이해가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2019년(0.92명) 대비 0.08명 감소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5년간 225조4천억원에 달하는 저출산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이를 기르는 과정 자체인 공공 가족급여 지출 비중은 37개국 중 32위에 그쳤다.

저출산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집값이 폭등하고 안정된 일자리가 없으며 보육과 교육, 노후에 대한 커다란 불안감이 출산 기피로 나타난 것이다. 주거와 일자리, 보육 및 근무 환경, 입시를 포함한 교육 제도 전반에 걸친 사회 구조적 변혁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는 뜻이다.

대선 출마가 유력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맞벌이 부부의 육아와 교육 부담을 덜어줄 복지제도로 '온종일 초등학교제'를 제안했다. 2030년까지 모든 초등학생이 부모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하교할 수 있도록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학교에 오래 붙잡아둔다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일하고 돌보는 사회가 되진 않는다. 정밀한 공교육 시스템과 경쟁적 입시 제도의 변화, 유연근무제의 일반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이 대표의 공언이 겉만 번지르르한 돌봄 정책에 머물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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