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빈센조’, 박재범 작가식 활극 풍자… 이젠 마피아다

입력 2021-03-05 06:30:00

‘빈센조’, 이탈리아 마피아로 풍자한 코리안 카르텔

tvN 드라마
tvN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자료=tvN

이 드라마, 제목부터 심상찮다. '빈센조'. 우리네 드라마와는 달리 어딘가 이질감을 주는 이탈리아 이름을 가진 이 드라마는 그곳의 마피아를 우리네 현실 속으로 소환한다. 그런데 이 마피아가 싸우는 적들이 흥미롭다. 이른바 '관피아', '검피아'로 불리는 코리안 카르텔이다.

◆박재범 작가식 활극 풍자의 마피아 버전

아마도 예고편에 등장한 심상찮은 빈센조(송중기)의 분위기에 이 드라마가 누아르가 아닐까 생각한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을 게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는 실제로 첫 회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마피아들의 전쟁을 보여준다.

거대한 포도농장을 통째로 불태우고, 자신을 살해하려는 암살범들을 모조리 처단한 빈센조는 그 길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의 목적은 중국의 마피아가 자신의 조언대로 금가프라자라는 건물 지하 비밀금고에 숨겨놓은 막대한 금괴들을 꺼내 은퇴하는 것.

금괴의 존재를 아는 유일한 인물인 그 마피아는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 건물의 실소유주는 빈센조라 모든 게 쉬울 줄 알았지만 그는 의외의 장벽에 부딪친다. 금가프라자를 빼앗아 재개발하려는 바벨건설이 등장한 것.

그런데 이 바벨건설의 모기업 바벨그룹의 카르텔(?)이 만만찮다. 조폭이나 다름없는 행동대원들을 동원하는 앤트재무관리, 돈 많은 이들 편에서 범법행위까지 막아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우상, 여기에 불법적인 마약성 진통제를 식약처 승인까지 받아낼 정도로 먹이사슬처럼 정관계, 언론계와 연결되어 있는 이른바 '코리안 카르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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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자료=tvN

그래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인 빈센조와 코리안 카르텔의 대결 구도는 초반 분위기처럼 누아르의 냄새를 풀풀 풍기지만, 의외로 드라마는 코미디로 방향을 튼다. 한국 땅을 밟은 빈센조는 공항에서부터 지갑을 노리는 잡범들에게 굴욕을 당하고, 이태리 장인이 만든 수제 양복은 구제옷 취급을 받으며, 하다못해 한 달 간 머물기 위해 얻은 허름한 집은 샤워기조차 말을 듣지 않아 힘겨워 한다.

금가프라자를 재개발하려는 바벨건설과 맞서다 의도치 않게 입주민들의 영웅이 된 빈센조는 만만찮은 한국에서의 삶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가 한국의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디였다는 게 드러난다. 빈센조라는 마피아를 이탈리아 본토에서부터 소환시킨 건 그가 맞서게 될 '코리안 카르텔'을 풍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마피아 누아르가 블랙코미디로 바뀌는 부분에서 다소 의아해했던 시청자들이라도, 이 작품의 작가가 박재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을 게다. 그의 전작들인 '김과장'과 '열혈사제'를 통해 이른바 '박재범 작가식 활극 풍자'의 세계를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열혈사제'는 여러모로 '빈센조'와 이야기 구조가 닮아 있다. 평범한 서민들을 지켜내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정관계 카르텔과 어쩌다 맞서 싸우게 된 영웅의 이야기. 사제 대신 '마피아' 버전으로 해석된 작품이 '빈센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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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자료=tvN

◆이탈리아 마피아와 한국의 서민 사이

물론 블랙코미디로 그려진다고 해서 마피아 누아르적 감성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빈센조가 담배도 피우지 않으면서 늘 갖고 다니는 지포 라이터는 이 이탈리안 마피아의 처단 방식과 그로 인해 그려질 액션의 형태를 잘 드러낸다. 그건 첫 회에 이탈리아의 포도농장을 몽땅 불태워버리는 장면에서부터 예고된 바였다. 그는 적진으로 들어가 기름을 뿌리고 불 켜진 지포 라이터를 던져 모든 걸 불태워 버린다.

법의 무력함을 잘 알면서도 약자들을 지나칠 수 없어 그들 편에서 싸워온 인권변호사 홍유찬(유재명)이 저들의 테러에 살해당하자, 빈센조는 마피아식 복수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사주를 받고 살해한 인물을 협박해 그 윗선을 하나하나 찾아올라가 그 몸통에 바벨제약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빈센조는 바벨제약 원료 저장 창고를 불태워버린다.

그 불타는 원료저장창고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며 차를 타고 빠져나오는 빈센조는 홍유찬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아니 어떻게 그런 약을 만들 수가 있어. 내가 감방가도 좋으니까 정말 싹 다 불태워 버리고 싶네 그냥."

그 말대로 싹 다 불태워 버리고 빠져나오는 빈센조의 모습 위로 오페라 투란도트의 명곡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속 유명한 가사인 '빈체로(vincero)'가 흘러나온다. '승리하리라'는 의미를 가진 '빈체로'는 빈센조라는 이름과 어원을 같이 하는 단어다. 빈센조라는 이름이 '승리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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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자료=tvN

이름에도 이탈리아식 의미가 담겨있고, 아메리카노를 '구정물'이라 부르며 에스프레소만을 고집할 정도로 빈센조는 이탈리아 문화를 담은 마피아 캐릭터지만, 동시에 한국 서민과의 강력한 연결고리 또한 갖고 있다. 그것은 힘이 없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엄마가 이제 말기암으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끝까지 찾아와 재심을 하자고 설득해온 인물이 다름 아닌 홍유찬 변호사라는 사실은 이 이탈리안 마피아가 한국의 서민과 연결되는 지점을 잘 드러낸다.

박재범 작가는 절묘하게도 이질적일 수 있는 이탈리안 마피아와 한국의 서민이라는 두 문화의 접점을 빈센조라는 한 인물 속에 투영시킴으로써, 때론 그 비교를 통한 웃음과 유머를 코미디로 풀어내고, 때론 서민영웅 판타지를 마피아식 액션 누아르로 풀어낸다.

◆김희원 PD의 클래식 음악을 통한 자유자재의 장르 연출

'빈센조'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는 김희원 PD의 연출이다. 2017년 그가 입봉작 MBC '돈꽃'을 연출하며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건 다소 막장드라마 같은 대본마저 유려한 운명적 이야기로 포장해낸 그의 연출력 때문이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활용해 인물들의 심리를 극대화하고, 그 동작에서조차 미학적인 선을 담아내는 연출은 '돈꽃'을 마치 그리스 비극의 하나처럼 보이게 해줄 정도였다. 김희원 PD는 그 후 MBC를 퇴사해 맡게 된 tvN '왕이 된 남자'를 통해서도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빈센조'는 그의 이런 연출력이 제작비 200억원의 대작에서도 빛을 발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앞서도 언급했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의 한 대목을 가져와 폭발하는 원료 저장 창고의 폭음을 축포처럼 들리게 연출해낸 대목이나, 한껏 이탈리아 감성의 분위기를 풍기는 빈센조가 한국사회에서 당하게 되는 굴욕들로 반전의 웃음을 만들 때도 여지없이 클래식이 활용된다. 유려한 클래식의 선율이 흐르다 이를 우스꽝스럽게 변조해 코미디로 만들어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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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자료=tvN

마피아 버전으로 풀어낸 박재범 작가식 활극풍자에, 김희원 PD의 누아르와 코미디를 넘나드는 연출이 더해진 데다, 송중기 같은 비주얼만으로도 시선을 잡아 끌 수밖에 없는 배우가 포진한 '빈센조'는 예상대로 단 4회 만에 10%(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간단히 넘겼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빈센조'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악마가 악마를 몰아낸다"는 이탈리아 속담의 한 구절이 대사로 등장하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빈센조라는 마피아가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마피아' 같은 카르텔을 마피아의 방식으로 몰아내는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우리네 현실에서 상식적인 정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서민들에게는 이 판타지가 의외로 강력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검피아'라는 말까지 회자되는 현실이 만들어진 건 우리네 사법 시스템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 아닌가. 깔깔 웃으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지만, 드라마가 투영하고 있는 현실은 이토록 무겁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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