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

입력 2021-03-01 06:30:00 수정 2021-03-01 06:36:51

노동일 경희대 교수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항신항. 사진은 지난 4일 촬영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항신항. 사진은 지난 4일 촬영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대한민국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을까. 대통령과 여당이 사활을 건 역점 사업에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반대하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관련 부처 모두가 우려를 표한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부터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사업비가 부산시 주장처럼 7조5천억원이 아닌 28조6천억원에 이른다는 추산을 비롯해 안전성과 경제성, 접근성 등 7가지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신공항 추진을 위한 주무 부처의 사전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전타당성 조사를 간소화하고 필요하면 예타도 면제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에 반대 입장을 보인 것이다. 법무부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적법절차와 평등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른 국책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

일부의 지적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일 수도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애먼 공무원들만 책임을 떠안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의 여파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문제점을 알고도 이를 지적하지 않으면 '성실의무 위반'과 '직무 유기'로 처벌될 수도 있어 알리바이를 만들어 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공무원들의 일관된 반대 의견 표명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특별법을 만들어 일사천리로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그만큼 후폭풍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공직자들이 인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졸속으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처리하고 말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경실련의 지적처럼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공항"이 될 게 뻔하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표 외에는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질주하는 그들에게 역사와 국민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

2016년 영남권 5개 시도는 '동남권 신공항' 논란을 김해공항 확장으로 귀결 지은 용역 결과에 승복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 수행한 용역 결과 가덕도 공항 건설안은 가장 낮은 점수로 백지화된 바 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세계적 전문가 집단이 내린 결론과 대국민 승복 다짐을 뒤집은 결과이다. 가덕도 신공항이 선거용으로만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4월 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용으로도 가덕도 신공항은 살아 있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여당이 공항 건설에 속도를 낸다면 반대할 수 없는 야당은 다시 곤궁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국가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최선의 방안은 내년 대선까지 가덕도 신공항 논란만 벌이다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공허한 약속인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정치권이 선거에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무승부로 끝낼 수 있는 방안이다. 차선책은 지금부터라도 사전타당성 검토와 예비타당성 조사를 꼼꼼히 진행하는 것이다. 가덕도 공항을 건설하려면 전체의 80%를 인공 매립해야 한다. 바다 수심이 깊고 가파른 산을 깎아야 한다. 건설 과정의 어려움과 비용이 40조원 가까이 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다. 환경 파괴는 물론 지반 침하를 방지하기 위한 유지 비용으로만 매년 10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한다.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되면 바다 위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항공기 이착륙 시 위험이 가중된다는 문제부터 부각될 것이라고 한다. 2030년 항공 수요 역시 희망 사항일 뿐이다.

선거 국면이 지나면 결국 국토부의 지적과 같이 안전성과 경제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올 게 분명하다. 차악은 건설을 시작하더라도 중단 시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희망 고문을 당하는 부산 시민에게는 미안한 꼼수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 차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서 그나마 정상 참작이라도 받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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