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은 상처, 기록으로 기억하다
나에게 대학도서관은 보배로운 곳이다. 2018년 우연히 대구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하는 책을 쓸 기회를 갖게 됐고, 이를 계기로 대학도서관과 뗄 수 없게 됐다. 독립운동사에는 문외한이지만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가끔 역사 글을 쓴 일만 믿고 겁 없이 책을 낸 덕분에 지금껏 관련 작업을 하는 만큼 옛 자료의 보고(寶庫)인 대학도서관은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실 1986년 대학 졸업 뒤 다니던 직장을 접고 재취업을 위해 1987년 6월, 모교 부근 자취방에서 새벽별을 보며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보낸 1년 세월을 빼면 1988년 5월 재취업 이후 도서관과는 이별이었다. 졸업 20년만에 입학한 야간대학원 시절도 그랬다. 자칫 도서관과의 인연은 대학 4년과 재취업을 위한 임시 피난처 1년으로만 기억에 남을 뻔했다.
하지만 독립운동 관련 작업 이후 최소한 나에게 대학도서관은 희귀 책과 뭇 자료가 넘치는 보물 창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출이 힘든 경우 복사를 애걸(?)하고, 곤란할 때는 아는 인연의 지인을 동원해 필요한 쪽을 살짝 사진 전송받아 출력, 마치 무슨 보석인양 정성껏 제본해 갖는 기쁨도 맛봤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이젠 몇 상자가 될 만큼이다.
특히 지난해 경북대도서관 장서 목록에서 발견한 몇몇 자료는 대구의 독립운동(가) 연구에 또다른 길라잡이가 됐다. 특히 일제강점기 대구경북 경찰사 파악에 도움이 된 '한국경찰제도사-경찰교양총서'(1957년 국립경찰전문학교 편찬·발간)와 '한국경찰사Ⅰ'(1972년 내무부치안국 발행)이 그렇다. 현재 대구경북 경찰 자료에는 당시 자료가 지나칠 만큼 소략한 탓이다.
밀정을 풀고 한국인을 괴롭힌 일경(日警)의 앞잡이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목숨을 앗은 고등경찰이 설친 기관이었고, 광복 이후 임시정부 경찰을 첫 출발로 삼는 오늘의 경찰로서는 그럴 만하다. 일제 경찰의 역사는 싹 지우고 싶겠지만 대구 독립운동 연구에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럼에도 실제로 관련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하니 두 책의 희소성이 돋보인다.
또 한 자료는 대구출신 독립운동 활동가 이두산(李斗山·1876~?)의 한국전쟁 때 일부 행적 파악 단서가 된 1990년 (사)한국안보교육협회 발간 '1950·9 서울시임시인민위원회 정당·사회단체등록철'이다. 펴낸 곳에도 없던 자료였다. 여기엔 1950년 7월 5일 등록 당시 이두산 대표의 조선대중당 등 183개 정당·단체 정보가 실려 있다. 이를 고리로 두 아들(정호·동호)과 독립운동을 한 그의 행방을 밝혀 큰 아들 부부(이정호·한태은)처럼 독립유공자 서훈의 날을 보고 싶다. 중국에서 헤어진 차남 이동호 행적도 밝힐 자료를 만나길 비는 마음이다.

또 다른 자료는 이젠 사라진 대구감옥(형무소) 추적에 도움을 준, 70대 노(老) 독립운동가의 1919년 투옥 일기인 '국역 흑산일록-대구감옥 127일, 그 고난의 기록'(장석영 지음·정우락 옮김, 2019년)이다. 필자는 이를 갖고 대구독립운동 연구 후속 작업으로 2020년 펴낸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에서 100년 전 감옥 모습 일부를 전하게 됐다.
이런 대학도서관 인연을 생각할수록 늦었지만 그동안 필자의 독립운동 공부에 도움과 귀한 자료를 제공해주신 모든 분들께 지면으로나마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대학도서관은 대구 독립운동 연구에 등대가 될 것이기에 자주 찾고자 한다.
정인열 매일신문 논설위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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