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피노키오 대법원장

입력 2021-02-22 06:30:00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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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이 공개된 지 보름 만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온갖 변명으로 가득 찬 면피성 사과문. 그마저 국민에게 공개한 것이 아니라 법관들만이 볼 수 있는 내부망에 올렸다. 법원 안팎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나 보다. 심지어 그의 거짓말은 사과문에서까지도 이어진다.

그의 사과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하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여기서 그가 한 거짓말은 두루뭉술 '부주의한 답변'으로 처리되어 있다. 자신이 주의가 좀 부족했을 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사안 자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제가 해당 사안에 대하여 정치권과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하여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녹취록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

녹취록에서 그는 자신이 살펴야 한다는 그 '정치적인 상황'이 무엇인지도 노골적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결국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탄핵 얘기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 두려고 임성근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얘기.

그의 거짓말은 이어진다. "해당 법관의 사직 의사 수리 여부에 대한 결정은 관련 법 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고 부인하나, 녹취록에서 그는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법률적 조치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해 두었다던 그가 이제 와서 '관련 법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법적 근거는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사표를 반려한 그 조치가 대체 어떤 '법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밝힐 수도 없을 게다. 왜? 그런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형식이나 내용 모두 진정한 사과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외려 사과의 형식을 빌려 뻔뻔한 거짓말로 자기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상습적인 거짓말쟁이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최종적 진실을 가리는 기관인 사법부의 수장 노릇을 하는 나라에 살게 됐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거짓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켜야 할 대법원장이 정치적 고려에서 몇몇 얼빠진 국회의원들의 영향력을 사법부에까지 끌어들였다. 이거야말로 신판 '사법 농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명 당시에도 그는 자신이 내친 그 판사들을 이용해 야당 국회의원들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치 판사가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나고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그의 '개인적'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고로 그의 사퇴 거부는 그의 의지를 넘어 이 정권의 의지로 봐야 할 게다. 즉, 사법부가 자신들의 불법·위법·탈법·초법에 계속 제동을 거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수장에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을 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효과는 당장 법원 인사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낸 가운데, 정권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온 판사들은 관례를 무시하고 계속 자리를 지키게 했다. 물론 재판 결과 하나하나가 정권 교체기에 갖는 비상한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일종의 예방조치라 할 수 있다.

검찰에 이성윤이 있다면 법원에는 김명수가 있다. 좌성윤 우명수, 한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두 기관을 권력이 모두 장악했다. 이 환상의 복식조에 법무부 장관이 가세했다. 정의란 곧 공정을 의미하는데, 그 정의부의 장관이 민정수석에게 '우리 편'이 되라고 종용했단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 '정의'는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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