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현대인의 긴 수명과 높은 생활수준은 농업, 의료, 산업에 적용된 과학과 기술에 기인하는 바가 커다. 과학기술의 채택에는 불합리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무조건적 환경 제일주의, 충동적 백신 불신이 그 예다.
지난주에 닥친 한파로 텍사스주에서 전력 수요가 급등하고 전력 생산은 급감하면서 수백만 가구가 정전을 겪고 있다. 근본 원인은 과학을 무시한 탈화석연료 정책이다. 환경운동가들의 영향으로 미국 정부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많은 보조금을 주어왔다. 그 결과 텍사스주는 풍력이 전체 발전의 42%에 이르게 되었다. 한파로 풍력발전의 93%가 중단되자 정전 사태가 난 것이다. 석탄 발전과 천연가스 발전을 각각 47%와 450%로 늘렸지만 역부족이었다.
GM(유전자 변형) 기술이 농작물에 적용되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면서 GM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GM을 이용한 대규모 기업농은 환경을 오히려 개선한다. 미국은 GM의 도입으로 작물 생산량이 44% 증대한 반면, 화학비료 사용량은 불변이고, 살충제 사용은 44% 감소했다.
백신 보급에도 반과학 운동이 있다. 안티 백서(Anti-Vaxxer)라 불리는 백신 접종 거부자는 백신의 안전성이 검증되어도 이를 불신하고 대량 접종을 반대한다.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발명한 것은 1796년이지만 천연두가 세계적으로 퇴치된 것은 1980년이다. 백신의 완전 보급에 약 200년이 걸린 것이다.
천연두 백신의 종주국 영국도 천연두 백신을 대량 보급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렸다. 백신이 살을 파낸다는 등 낭설과 의학 불신 때문이다. 1867년 들어 아동의 백신 접종이 의무화되자 10만 데모대가 죽은 아동의 관을 따라 행진하면서 제너의 화형식을 행하자 정부는 의무 조항을 폐지해야 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까지 화이자나 모더나가 제조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접종 횟수는 5천800만 회이다. 이미 1천600만 명이 풀 도스(2회 접종)를 받았다. 공급량이 더욱 증대한다지만 예상 밖의 변수가 있다. 연방식약청이 엄격한 안전성 검증을 통과했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인구의 31%가 백신을 맞지 않고 안전성을 더 지켜보겠다고 한다. 이 백신 유보파 비율은 흑인 43%, 히스패닉 37%로 특히 소수인종에서 높다.
백신 전반에 대한 불신과 거부는 오래된 사회운동이다. 하나의 예는 미국의 라임병(Lyme disease) 백신 거부 운동이다. 라임병은 사슴에 기생하던 진드기가 풀에서 사람의 몸으로 옮겨와 전염을 일으킨다. 관절염, 만성피로증, 심장병, 신경계 질환, 그리고 사망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병이다.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진단이 늦어 시기를 놓치면 완치가 힘들므로 예방이 최선이다. 라임병은 1970년대 초 코네티컷주의 라임시 아동들에게서 발견된 이래 급격히 증가해 왔다.
라임 백신은 이미 1990년대 말에 개발되었다.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의 리메릭스(LYMErix) 백신은 80%의 예방 효과가 인정돼 1998년에 식약청의 승인을 받았다. 2001년까지 투여된 140만 도스 가운데 불과 905건의 가벼운 반응이 보고되었고 관절염 발생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백신 저항 운동가와 이에 동조한 언론은 백신 부작용을 과대 선전했다. 여론 악화로 매출이 격감하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자발적으로 2002년에 판매를 중지했다. 경쟁사인 파스퇴르메리유콘놋(Pasteur Merieux Connaught)도 백신 이뮤라임(ImuLyme)을 개발했지만 식약청에 승인 신청을 취소했다.
라임병은 미국에서 현재 매년 40만 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질병통제예방센터가 10대 매개체 전염병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인체용 라임 백신은 생산되지 않지만 애완동물용 라임 백신은 이미 나와 있다. 라임 백신은 사람보다 동물이 먼저라는 웃지 못할 일이다.
17세기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 교회의 박해를 받았듯이 반과학 세력은 지금도 건재하다. 21세기 한국의 감사원장은 월성원자력발전소의 경제성을 밝히려다 탈원전 정권의 미움을 받고 있다. 일부 과격 운동가가 아니라 정권에 의한 반과학 운동이어서 충격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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