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세" 외쳐 유죄 받은 중학교 교사, 딸아이 손 편지가 살렸다

입력 2021-02-16 11:12:38 수정 2021-02-16 11:20:02

대구지법 경주지원 재심서 무죄 선고, 42년만에 억울함 풀어

1979년 8월26일 A씨의 딸이 보낸 손 편지.
1979년 8월26일 A씨의 딸이 보낸 손 편지. '아빠 얼굴을 몰라요. 벌써 20일이 넘었을 테니까요'라고 쓰여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제공.

"검사 아저씨 안녕하세요. 우리 아빠는 아무 죄가 없어요. 아빠가 없으니까 걱정이 되어서 학교에서 공부도 못하겠어요. 내일이라도 남북통일이 되면 아빠가 나오실 텐데. 제발 우리 아빠 풀어주세요. 아빠 얼굴을 잊어버려 몇 번이고 다시 그려보곤 했어요…."

40여 년 전 술에 취해 "김일성 만세"를 삼창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처벌받은 남성이 어린 딸의 편지 덕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대구지법 경주지원은 지난달 27일 옛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지난 1979년 처벌을 받은 A씨 유족이 제기한 재심 청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중학교 교사였던 A씨는 1979년 8월 3일쯤 동네 주민들과 술을 마시던 중 '김일성 만세'를 3차례 외쳤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반국가단체 구성원을 찬양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A씨는 집행유예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직업까지 잃었다. 생전에 아내에게 '수사 과정에서 전기고문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라고 호소했던 A 씨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났다.

A씨 유족은 2019년 6월 재심을 청구했고 1년 뒤 법원이 재심을 시작했다. A 씨가 숨지고 15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무죄 입증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딸이 수사기관에 보낸 손 편지 등을 근거로 수가 기관의 불법구금 정황 등을 인정했다.
당시 열 살이었던 A씨의 딸은 수사기관에 손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20일이 넘도록 아빠 얼굴을 못 봤다. 제발 우리 아빠 풀어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법원은 약 7개월간 심리 끝에 지난달 27일 "피고인 자백진술이 영장주의 원칙에 반해 이뤄진 불법구금 상태에서 이뤄진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고 '김일성 만세'라고 외친 것은 반공법 위반엔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A씨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인근 주민과 시비가 붙게 된 점을 들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고,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민변은 이날 논평을 내고 환영했다.

"재판부는 A씨의 '김일성 만세'를 외친 행위가 진의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과장된 표현에 불과하며 국가 존립이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피해자 중심적 접근으로 인권침해를 적극적으로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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