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스타 선수인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과거 학교 폭력 문제가 사회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이 선수들은 소속 팀인 흥국생명의 핵심일뿐 아니라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었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기에 과거의 잘못이 드러나 한순간에 몰락하게 됐다. 이들의 추락보다 학교 폭력 피해자를 위한 조치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들은 소속 팀으로부터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고 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을 무기한 박탈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 뿐만 아니라 남자배구 OK금융그룹 소속의 송명근, 심경섭도 과거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밝혀져 파장이 번지고 있다. 해당 선수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입장문을 냈으나 이들을 향한 사회적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여자 배구 선수도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앞서 트롯 가수인 진달래는 과거 학교 폭력의 가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출연 중인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다. 스타급 선수들이나 유명 가수라면 성공적인 경력과 실력에 걸맞게 인성과 생활의 자세도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데 이들은 그러한 사회적 기대를 저버려 지탄받게 됐다.
학교 폭력은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되므로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철없는 행동이라며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쉽게 받아들여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가해자들의 뼈저린 반성과 진실 어린 사과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파문은 사건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도 아픔을 주고 있다.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지는 오래 됐지만, 인기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팬들과 사회 구성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 충격의 여진이 적지 않다.
폭력은 인간의 야만적 측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음습한 구조 속에서 관행처럼 진행된 폭력 문제가 끊임없이 야기됐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과거 군대 내의 폭력이 당연시되던 때가 있었다. 직장 내 상사와 하급 직원 간의 언어 폭력, 심지어 물리적 폭행도 수반된 갑질 문화, 대기업과 하청 기업간 폭력적 갑을관계, '미투'로 촉발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과거에는 없던 일처럼 치부됐던 사회 곳곳의 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옴으로써 개선되는 효과도 있지만, 여전히 고질병처럼 남아있기도 하다.
특히 체육계의 폭력 문제는 잊을만 하면 터져 나왔고 최근에는 더 자주 폭로되고 있다. 초·중·고 학생시절부터 대학·실업·프로팀으로 이어지는 지도자와 선수 간, 혹은 선·후배 선수 간의 엄격한 위계질서, 그 위계 질서 속에서 빚어지는 폭언과 폭행,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억압적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혹독한 훈련 등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폭탄의 불씨처럼 언제든 타오를 수 있다. 팀 내에서 실력 있는 선수가 특정 선수를 괴롭히는 행위가 있더라도 지도자와 주변에서 모른 척 덮어버리고 지나가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쇼트트랙 코치 조재범의 성폭행 사건, 철인3종경기 고(故) 최숙현 선수가 지도자와 동료들에게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 등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학교 폭력과 체육계 폭력 문제 등은 과거에는 주위에 알려지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외부에 드러나도 서둘러 봉합해 지나가곤 했다. 이제는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적극적으로 폭로함으로써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오래 전 과거의 학교 폭력 문제도 언제든 되살아나 공론화될 수 있다. 여성들의 성폭행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의 흐름이 학교 폭력에 대한 '미투'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양상이다. 체육계의 또다른 폭력 피해 폭로 사례가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폭력적 문화가 배여있는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되돌아보게 하면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겠다.

학교 폭력과 체육계 폭력에 대한 대처는 이처럼 변화된 시대적 요청에 호응한다는 새로운 인식 하에서 출발해야 한다. 개별 사건에 대한 수습이 아니라 학교와 체육계 전반에 퍼져 있는 폭력 문제를 근원적으로 없애겠다는 마음가짐과 자세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통령이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체육계의 폭력과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뿌리뽑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지만, 학교 체육을 담당하는 교육부도 비상한 자세로 학교 폭력 문제에 임해야 한다.
체육계 전반의 뼈저린 자성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학교 폭력과 체육계 폭력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표면적 해결에 치중해 수습하곤 했다. 해당 지도자와 선수들이 징계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폭력이 야기하는 심각한 상처를 외면한 채 안이하게 사안을 다루는 것이 보통이었다. 폭력은 목표를 향해 훈련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하는 바람에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지 못했다. 지도자와 선수들,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대한체육회 등 체육행정 분야가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곪은 상처가 터지듯 문제가 불거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때마침 스포츠 인권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2차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일명 최숙현법)이 19일부터 시행된다. 일명 '최숙현법'의 핵심 내용은 ▷체육인에게 인권침해·비리 즉시 신고 의무 부과, 신고자·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직권조사 권한 명시, 조사 방해·거부 시 징계 요구 등 스포츠윤리센터 조사권 강화 ▷가해자에 대한 제재 및 체육계 복귀 제한 강화 등이다. 이 중 핵심 역할을 하는 스포츠윤리센터는 해당 기관·단체에 시정조치 또는 책임자 징계에 관여하고 피해자 보호조치, 피신고인의 업무배제 등의 조치 권고 등을 할 수 있는데 제대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책 마련에 부심하던 한국배구연맹(KOVO)도 앞으로 학교폭력 연루자를 신인 드래프트 대상에서 제외하고 나중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드러날 경우 영구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영구제명은 강간, 유사 강간, 이에 준하는 성폭력, 중대한 성추행 시에만 취해졌다. 이러한 움직임과 더불어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대책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인성이 훌륭하지 못하면 스포츠계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인식을 제대로 심어줘야 한다.
지도자의 자질 향상과 올바른 리더십 정립, 지도자와 선수 간, 선·후배 선수 간 지나치게 엄격한 위계질서 타파,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합숙훈련의 폐지 검토, 동료와 상대를 배려하고 화합할 수 있는 팀 문화 조성, 선수 발굴과 육성 시스템 등 엘리트 스포츠 전반에 대한 점검 등이 필요하다. 체육계가 더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지 않도록 체육계와 관계 당국 모두의 세심한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김병준 인하대 스포츠과학연구소 교수 등 전문가들은 팀 내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도자, 선배, 실력있는 선수들에 대한 교육과 감시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번 학교 폭력 파문을 지켜보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은데도 폭력이 두려워 그만두고 싶었다는 고백은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이재영·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피해자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가해자들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며 "가해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건가. 미안한 마음이 있기나 한 건가"라고 했다. 피해자들의 아픔과 절규를 되새기면서 학교에서, 체육계에서, 우리 사회에서 야만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사라지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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