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친소] 땡처리하듯 판매되는 파양견…"당장 데려가면 십만원 깎아줄게요"

입력 2021-02-08 14:28:50 수정 2021-08-13 15:37:08

반려동물 카페에 올라온 파양 글…사람들 무관심에 마음 쓰여 입양
갑자기 환경 바뀌자 적응에 혼란…파양·유기견 버려질까 주인 눈치
끝까지 책임진다는 주인 의식 중요

다정 씨 집의 둘째 미남이는 유기견 출신이다. 미남이는 종종 이런 표정을 지으며 다정 씨의 눈치를 본다.
다정 씨 집의 둘째 미남이는 유기견 출신이다. 미남이는 종종 이런 표정을 지으며 다정 씨의 눈치를 본다.

"지금 당장 데려가면 십만원 깎아 드릴게요" 땡처리 하듯 견주가 강아지를 들어 보인다. 강아지는 혀를 내밀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주인과 산책 나온 줄 아는 걸까. 해맑은 모습에 순간 울컥한다. "왜 파양하시는거죠?" 이유를 묻자 견주가 잠시 주춤한다. "그게..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바람에.. 아 그리고 본가에 있는 아이들과도 안 맞더라고요" 계좌번호만 남겨둔 채 견주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강아지는 주인이 나간 문을 보며 한참이나 울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로 6개월 된 파양견 입양

경산에 사는 김다정 씨는 5년 전 온라인 카페 '강사모'를 통해 베들링턴 테리어종 한 마리를 입양했다. 강사모 카페는 파양글과 입양글이 금지돼 있고 이는 가입 절차에도 명시 돼 있다. 하지만 당시엔 여러가지 이유들로 잠깐 파양이나 입양 글이 자주 올라오던 시기였다. "6개월 된 아이를 파양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어요. 이미 두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고, 입양은 생각도 하지 않을 때라 별 대수롭지 않게 글을 넘겼죠"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글은 없어지지 않았다. 말티즈나 푸들 같이 작은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달리 댓글은 커녕 조회수도 낮았다. 많은 활동량, 큰 체구, 개성있는 외모를 가진 종의 특성 때문일 것이라 짐작됐다.

경산에 사는 김다정 씨는 5년 전 온라인 카페
경산에 사는 김다정 씨는 5년 전 온라인 카페 '강사모'를 통해 베들링턴 테리어종 한 마리를 입양했다.. 파양견 히릿을 처음 데려온 날의 모습.
털 정리가 되지 않은 파양 당시 히릿의 모습. 다정 씨는 버림받은 모습을 지우기 위해 미용실과 동물병원을 몇 번이나 오갔다.
털 정리가 되지 않은 파양 당시 히릿의 모습. 다정 씨는 버림받은 모습을 지우기 위해 미용실과 동물병원을 몇 번이나 오갔다.

"선뜻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흘려보냈던 글들이 언젠가부터 계속 신경쓰이더라고요. 이 아이 어떻게 됐나, 누가 데려갈까" 주인이 나간 문을 보며 하염없이 울던 그 강아지는 '히릿' 이라는 이름으로 다정 씨의 가족이 됐다. 버림받은 모습을 지우기 위해 미용실과 동물병원도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른다. 때 빼고 광 내며 아픈 기억도 말끔이 씻겨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다정 씨와 몇 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히릿은 아직도 첫 주인을 잊지 못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산책을 하다 키가 큰 남성이 제 옆을 지나가자 하울링을 시작하더니 곧장 남성에게로 질주 했다. 다정 씨가 질질 끌려갈 정도로 힘차게 달려가서는 또 울기 시작했다고. "전 주인과 닮은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여성분이 파양하기 전 남자친구분께서 쭉 키워오셨다는 말도 생각났고요"

◆ 불상사 반복되지 않도록 유기견 입양 신중하게

사는 환경과 주인이 바뀌게 된 강아지에겐 모든 것이 혼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옆에 든든한 친구가 있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히릿이 저희 집에 적응할 수 있었는 데에는 둘째 미남이의 공이 커요. 이런 과정을 먼저 겪은 미남이가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둘째 미남이는 유기견 출신이다. 범물동 범일초교에서 발견 돼 동물병원에 보호 중인 아이를 다정 씨가 데려왔다. 당시 한 마리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고, 친구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던 중 유기견 입양을 돕는 포인핸드 앱을 알게 됐고, 그 곳에서 미남이를 발견했다. 안락사 기간이 지났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글에 다정 씨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고.

범일초교에서 발견 돼 동물병원에 보호 중이던 미남이의 모습.
범일초교에서 발견 돼 동물병원에 보호 중이던 미남이의 모습.
미남이와의 첫 만남. 눈은 털로 덮혀 보이지도 않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쓰레기통을 뒤졌던 탓에 냄새가 고약했다.
미남이와의 첫 만남. 눈은 털로 덮혀 보이지도 않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쓰레기통을 뒤졌던 탓에 냄새가 고약했다.

유기견 입양 절차는 꽤 까다롭다. 또 다른 유기와 파양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가족관계와 가족들의 의견부터 사는 환경과 직업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또 업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장칩과 중성화 수술을 필수로 한다. 여러 절차를 거친 뒤 만나게 된 미남이. 하지만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눈은 털로 덮혀 보이지도 않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쓰레기통을 뒤졌던 탓에 냄새가 고약했다. 구조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병원 케이지 안에서만 생활해서인지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수구 냄새가 났다. 그 뿐만인가. 영양실조가 의심 될 정도로 비쩍 마른 상태였다. 유기되었다는 사실과 병원 환경이 낯설어서 인지 밥을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데려오니 그제서야 허겁지겁 사료를 먹더라고요. 살았다는 안도감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집도 있고, 주인도 있지만 미남이는 종종 가슴아픈 행동을 한다. 꽝 소리가 날 정도로 다리를 심하게 부딪히고도 아프다는 내색을 않거나, 식욕이 강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밥 먹는것을 기다렸다 먹는다. 이렇듯 유기견들에게는 종종 또 다시 버려지면 안된다는 의지의 행동들이 비춰진다. 미남이는 심지어 표정으로도 그 의지를 내비치곤 한다. 흰자가 보이는 것이 눈치를 보는것 같기도,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표정이 '나를 버리지 마세요' 라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에서 찾아보곤 대성통곡 했어요" 미남이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함께 있어 달라고.

파양견 히릿과 유기견 미남이의 모습. 다정 씨 집에서 이 둘은 둘도 없는 친구다.
파양견 히릿과 유기견 미남이의 모습. 다정 씨 집에서 이 둘은 둘도 없는 친구다.

◆ 반려동물 끝까지 책임지는 인식 무엇보다 중요

"그럼 첫째는 어디서 데려오신거에요?" 둘째 미남이, 셋째 히릿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득 궁금해진 첫째. 우물쭈물 대던 다정 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답한다. "펫샵이요.." 사실 다정씨는 첫 번째 반려견을 펫샵을 통해 입양했다. 당시엔 반려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거니와 추천 받은 분양처서 펫샵 뿐이었던 것. "나중에 되서야 펫샵의 실체와 개농장의 실태를 알게 됐어요. 유기견과 파양견도 입양을 할 수 있구나 라는걸 그때야 알게 됐죠"

유기견, 파양견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예쁜 장난감' '예쁜 악세사리'로 규정짓는다. 펫샵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반려동물에 대한 외모지상주의가 계속되는 한 파양과 유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예쁜 외모의 강아지 매물이 나오면 운송비를 줄 테니 3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와달라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강아지가 살찌거나, 조금만 크거나, 아프게 되면 또 다른 강아지를 구해달라고 연락이 옵니다"

결국 유기견이나 파양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유기견 입양을 위해 왔다가도 나이나 크기, 생김새로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리고 예쁜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마음마저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다홍치마를 찾는 사이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유기되고, 파양되며 주인을 찾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조금이나마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정 씨는 말한다. "사거나 입양하거나, 제가 다 해봤잖아요. 어느 선택이건 나쁜 건 아니라고 봐요. 그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는게 중요하죠"

새 주인을 만난 히릿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다정 씨는 히릿에게 새로운 세상이 되어 주었다.
새 주인을 만난 히릿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다정 씨는 히릿에게 새로운 세상이 되어 주었다.
유기견은 입양이 되더라도 새로운 가족,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힌다. 하지만 미남이는 다정 씨의 기존 반려견과도 사이좋게 잘 지낸다.
유기견은 입양이 되더라도 새로운 가족,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힌다. 하지만 미남이는 다정 씨의 기존 반려견과도 사이좋게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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