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할 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탱이가 내원했다. 목욕 중에 발버둥 치다 발톱이 부러졌다고 하셨다. 보호자의 손등에는 고양이 발톱에 할퀸 상처가 깊게 패었다.
탱이는 치료를 잘 받았다. 낯선 수의사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채 지혈 치료와 소독도 얌전하게 잘 받았다. 탱이는 착한 고양이였다.
고양이 중에는 유독 목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을 마실 때도 수염에 물이 닿을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물 자체를 싫어하나 생각이 들 정도다.

◆고양이가 목욕을 싫어하는 이유…목욕 대신 그루밍
고양이가 물과 친하지 않은 이유는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고양이 조상은 아프리카 사막 기후에서 진화되었다고 한다. 건조한 기후의 특성상 물을 접할 기회가 적다 보니 일광욕과 그루밍만으로 털을 관리하는 습성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한다. 물을 이용한 목욕을 한 적이 없었다.
고양이 털의 해부학적인 특성도 목욕을 싫어하는 이유가 된다. 고양이 털은 이중 모이다. 굵은 바깥 털은 방수기능이 있지만 속 털은 방수기능이 부족해 물이 닿으면 마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야생에서 추위를 견뎌야 하고 털을 청결하게 유지하기에는 난처한 상황이다. 길고양이들이 비가 오면 비를 피해 숨느라 식사도 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이 귀한 사막 기후에서 자신의 털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털이 엉키지 않고 속 털까지 환기가 중요했다. 일광욕을 즐기면서 혓바늘을 통해 빗질하듯이 그루밍을 반복한다. 심지어는 마른 모래 목욕을 하기도 한다. 햇살 아래에서 온종일 자신의 몸을 열심히 그루밍하는 것이 고양이의 목욕인 셈이다.
◆목욕을 유독 싫어하는 고양이… 이유는?
오랜 시간 주 서식지가 물가나 호수 주변에서 살아온 메인쿤, 노르웨이숲고양이, 벵갈 등의 품종은 오히려 물놀이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이러한 사실을 유추해보면 고양이는 물이 귀한 상황에서는 그루밍을 통해 자신의 털을 관리했지만, 물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응했음을 알 수 있다. 고양이가 물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고양이가 목욕을 죽어라 싫어하는 이유는 목욕에 대한 첫 경험이 나빴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자라는 고양이는 물이 익숙하며 매일 집사들이 목욕하고 드라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물과 목욕이 싫다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놀람이 두려움으로 확대된 경우이다. 집사와 고양이 간에 목욕 전쟁이 발발하는 이유이다.

◆고양이 목욕 요령
첫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목욕 과정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단계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어린이 욕조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넣어준다. 고양이가 욕조에 들어가 장난을 치며 익숙하도록 적응 과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음 단계는 장난감과 함께 소량의 물을 담아둔다. 끈이 달린 장난감을 이용하면 고양이는 첨벙첨벙 장난에 집중할 수 있다. 물에 대한 거부감이 한결 누그러졌음을 의미한다.
본격적으로 목욕을 위해서는 욕조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고 발이 잠길 정도의 온수를 부어둔다. 물에 뜨는 장난감을 함께 넣어주면 불안감 완화에 도움이 된다. 고양이와 계속 얘기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좋다. 중간중간 좋아하는 간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
몸을 적실 때는 뒷발부터 시작해 엉덩이, 허리, 얼굴 아래까지 적셔준다. 샴푸도 마찬가지이다. 귀, 눈, 코, 입 주변은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셔도 충분하다. 목욕 온도는 27도 정도의 미지근한 온도가 합당하다.
목욕을 마쳤다면 타월로 물기를 짜내고 약한 온풍으로 등부터 아래 방향으로 털을 말려준다. 실내 온도가 낮지 않은 정도라면 완벽하게 건조할 필요는 없다. 마른 담요를 살짝 덮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고양이는 신뢰가 형성되면 어지간한 아픔도 참아내는 무던함을 가지고 있다. 물과 목욕을 낯설어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조금만 배려한다면 고양이 목욕은 행복한 일상이 될 것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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