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사투리] 안동 토박이 말로 그려낸 진한 향토색

입력 2021-02-05 14:22:00 수정 2021-02-05 18:52:15

(2)예술 속 사투리-2. 권정생과 말똥굴레꽃

그림 남채은 作
그림 남채은 作

2).예술속 사투리

2.권정생과 말똥굴레꽃

말똥굴레꽃을 아는가. 작가 권정생이 소설 "한티재 하늘"에서 봄 풍경을 이야기 할 때 자주 등장시킨 들꽃의 이름이다. 말똥, 소똥들이 고샅길에 똥바가지별(북두칠성)처럼 찍혀 있고, 말똥굴레(소똥구리)가 열심히 경단을 만들어 굴리고 있는 곁자리에 피는 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바로 민들레다. 안동지방에서 쓰는 말이다. 권정생은 이 소설에서 작심하고 안동 사투리를 유감없이 그려냈다. 대사뿐만 아니라 지문에서도 대놓고 썼다. 안동 사투리의 보고다.

권정생 작가
권정생 작가

▶안동사투리의 보고

이 소설에는 안동 사투리로 하는 옛날이야기 한 대목이 나온다. 똥바가지별 이야기다. 짚신쟁이 할바이와와 수꾸떡장사 할머이가 물난리를 만나 강 이쪽저쪽 헤어지게 된다. 아들 일곱 형제가 똥바가지로 물을 퍼내보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가족이 다 죽어 하늘로 간다. 거기서도 할바이와 할머이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각자 생업에 힘쓰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아들 일곱 형제는 똥바가지별이 되어 부지런히 은하수 물을 퍼내고 있다. 감동한 옥황상제가 칠석날 하루만 까막까치 다리를 놓아준다. 견우직녀 이야기가 황혼로맨스로 바뀌었지만 해학과 구수한 사투리가 제 맛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숱한 생이별과 잘 어우러져 감동을 자아낸다.

권정생은 사투리를 문학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다. 그런 그도 등단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에서는 사투리를 피했다. 그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인 "강아지똥" 도 표준말로 썼다. 말똥굴레꽃이 아니고 민들레꽃이다.

"강아지 똥" 속에서 피어난 그 꽃을 그는 얼마나 말똥굴레꽃이라고 하고 싶었을까. "몽실 언니"도 사투리로 집필을 시작했으나 결국 표준말로 고쳐 쓸 수밖에 없는 굴욕을 당했다. 사투리를 제거하던 무식한 시대가 문학에 드리운 상처다. 생전에 나는 권정생에게 "몽실 언니"의 사투리 본을 권한 적이 있었다. 다 늦은 이야기다. "한티재 하늘"은 그의 한풀이였던 셈이다.

▶이육사의 詩에도 등장하는 사투리

이육사 시인의 작품에도 안동 사투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시 "초가" 의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래 짠 두 뺨 위에 모메꽃이 피었다"

는 부분이다. 봄기운에 마음이 빼앗긴 처녀들의 홍조 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술래 짠'은 술래놀이 할 때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동작을 부끄러울 때 얼굴을 가리는 동작에 비유한 것이고, '모메꽃'은 메꽃의 안동 사투리다. 연분홍색이다. 메꽃을 꺾어든 손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일 수도 있고, 홍조 띤 두 뺨의 색깔에서 메꽃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다.

언젠가 이육사의 산문 "청란몽" 을 읽다가 빙그레 웃음 지은 일이 있다. '뜰 앞에는 조롱들 속에서 빛깔 다른 새들이 시스마금 낯 설은 손님을 마저 알은체를 한다' 는 문장의 '시스마금'이라는 낱말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너무도 익숙하게 써온 사투리다. 마치 친숙한 이웃집 아저씨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운 감정과, 같은 안동사람이라는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 '시스마금'은 '시시마꿈'으로도 발음하며 '제각각'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는 '삐삔내로'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 쓰기도 하는데 주로 '뿔뿔이'라는 뜻에 가까울 때 쓴다.

▶표준말에 눈치 볼 이유 없다

뭍에 나와 사는 제주 친구들을 보면서 사투리의 생명력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들은 평소 대화를 표준말로 한다. 그러다가 고향 사람과 전화를 할 때면 당장 제주 사투리 모드로 급전환한다. 삶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고향, 고향 사람을 시로 쓸 때 정서적 언어를 얹지 않을 수 있겠는가. 표준말에 눈치 볼 일 없다.

내 시에 안동 사투리를 시어로 쓰기 시작한 것은 백석도 백석이지만 권정생의 영향이 크다. "한티재 하늘" 을 읽고 부터다. 졸시 "아배 생각" 에서 아버지와 주고받는 대사는 다 안동 사투리로 썼다. 아배, 어매, 할배, 할매도 어려서 쓰던 말이다. 삶의 언어를 시에 못 쓸 일이 하등 이유가 없다.

지난 해 낸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에는 안동 사투리를 살린 시 '안동식혜', '간고등어', '안동 헛제삿밥'등 세편이 실려 있다. 주로 음식 시다. 어려서 먹던 음식과 또 함께 떠오르는 사람을 풀어내는 데는 그 때 썼던 언어가 제격이 아니겠는가. 안 쓸 일이 없다.

어려서 형성된 정서는 변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려서 쓰던 말이어야 그 정서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아배, 아부지, 하고 부르다가 아빠, 아버지, 아버님이라고 고쳐 불러야 할 때 드는 그 낭패감이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나는 아직도 누나야, 하고 부를 때 여간만 어색한 것이 아니다. 누야, 누부야, 하고 부를 때 제 맛이 난다. 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올 봄에도 민들레꽃, 아니, 말똥굴레꽃은 지천으로 피어날 것이다. 하지만 말똥굴레꽃은 이제 심심하기 짝이 없게 피었다 지는 신세가 되었다. 좋아하는 말똥, 소똥도 이젠 없고, 또 같이 놀던 말똥굴레도 멸종되어서 무슨 재미로 말똥굴레라는 이름을 달고 사나. 경북 영양 어디에서는 몽골에서 수입한 말똥굴레를 이 땅에 복원하려고 사람이나 곤충이나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데, 또 하나의 멸종위기 종인 사투리를 살리자고 애쓰는 여기, 우리만큼이나 안쓰러운 시절이다.

글 안상학 시인

그림 남채은 단국대 서양화과 졸업· 중국 항주 레지던스 입주작가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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