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4년에 로마 최고의 웅변가 마르쿠스 키케로가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자 그의 동생 퀸투스 키케로는 형의 승리를 위해 몇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모든 사람의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유권자들에게 경쟁자의 성추문을 상기시키는 권모술수가 매우 효과적일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카멜레온처럼 대중앞에 멋지고 근사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항상 열성적인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이라는 주문도 있었다. 탁월한 연설 실력에다 동생의 조언을 참고한 덕인지 키케로는 집정관에 당선됐다.
오랜 옛날에 나왔던 퀸투스 키케로의 조언은 유효한 선거의 지혜(?)로 가득 차 오늘날에도 '선거에서 이기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을 정도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포퓰리즘적 공약을 내세우고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때로는 음해도 서슴지 말라는 전략은 오늘날 민주국가의 선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후보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 역시 기본적인 전략이다. 선거가 과열되다 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가 등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게임이다 보니 치졸하고 더러운 공격이 난무하게 된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시장 선거가 마치 막장 드라마처럼 흐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 가려 조명을 덜 받던 부산시장 선거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갑자기 불타 올랐다. 민주당은 호각세인 서울시장 선거와 달리 열세를 보이는 부산시장 선거의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려고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내세웠다. 며칠간 대응을 고민하던 국민의힘은 가덕도신공항 건설에다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공약으로 보태면서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다.
민주당의 가덕도신공항 건설 공약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합의하고 정리된 사안을 깨트렸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국책사업 과제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끌어들여 절차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2관문 공항으로 떠오른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10여년 전부터 부산과 대구경북 간 이해관계가 충돌한 사업으로 면밀히 검토돼왔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 신공항 입지를 두고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경쟁했지만, 양쪽 모두 경제성 부족으로 최종 백지화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는 공정성을 살리기 위해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ADPi)에 용역을 맡긴 결과 김해공항 확장안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가덕도는 적합성에서 2위인 밀양에도 밀려 3위에 그쳤다.
2016년의 결정으로 해묵은 논쟁과 갈등은 정리가 된 것이었다. 부산은 김해공항 확장안으로 방향을 결정했고 대구경북은 이후 지역 내 논의와 조정을 거쳐 경북 군위와 의성에 통합신공항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2011년의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있었고 2016년의 결정에는 공정성이 바탕이 됐다. 정치적 고려라는 비판이 있을 때에도 지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고 공정성이 바탕이 된 결정에는 누구라도 토를 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처럼 지난한 10여년의 성과물을 무시하고 갑자기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들고 나왔다. 오랜 시간 공들여 논의해 정리된 사안을 일거에 내팽겨쳤다는 점에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민주당의 행보는 또한 대구경북 사람들의 열망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악의적으로 느껴지고 분노를 자아낸다. 아무리 부산시장 선거 승리가 중요하더라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구경북민들을 이렇게 간단히 무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무총리 재직 시절 대구를 방문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한 바도 있다. 당시의 발언에서 2016년의 결정이 번복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의 지경에 이르고 보니 정부 당국자들의 지난 발언이 모두 허언으로 드러나고 만 것이어서 매우 허탈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대구경북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 이 지역 선거에서 고전한 데 대해 앙갚음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민주당은 이달 내에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하면서 예비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고 첨부가 원칙인 비용 추계서도 없다고 한다. 비용 추계를 담당하는 국회예산정책처가 현 시점에서는 공사의 구체적인 규모 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적시했다. 초대형 국책사업 과제를 제대로 된 검토없이 서둘러 밀어부치는 꼴이다. 선거 승리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고 막무가내로 가덕도 신공항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1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막대한 사업을 국가재정에 대한 고민 없이 서두르고 있다.
국민의힘의 대응도 매우 실망스럽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가덕도신공항 건설 공약을 받아들이면서 부산 유권자에 더 다가서고 싶었는지 한·일 해저터널 건설 공약을 더 보탰다. 역시 선거 승리에만 빠져 강력한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을 저버리는 행위다. 한·일 해저터널 역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으로 국가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한·일 해저터널 사업을 두고 여야 간에 '일본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검토한 사업'이라며 거친 공방까지 오가고 있다. 눈쌀을 절로 찌푸리게 되는 행동들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과거의 검토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는 별 실익이 없으며 일본에 도움이 되는 사업으로 결론이 난 사업이다. 국민의힘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도 공약으로 내걸었을 것인데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더구나 국민의힘이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거는 과정에서 대구경북 의원들은 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문제가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인지를 알텐데도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은 점은 지역 유권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다. 당의 선거 승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견을 내지 않았다는 점을 약간이나마 이해해야겠지만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사족으로, 국민의힘은 국회 대정부질문과 관련한 지침에서 정부에 '성폭행 프레임'을 씌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논란을 일으켰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보궐선거가 여당 단체장의 성추문으로 치르게 된 점을 상기시키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반응을 보였다는데 우려스러운 인식이다. 현실적으로 '프레임 씌우기'가 유효한 전략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정치가 정쟁을 유도해 이득을 보는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민생과 관련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마저 정쟁을 벌이고 선동을 일삼는다면 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는 후진적 행태일 뿐이다. 제1야당의 원내 대표가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 풍토와 문화가 그만큼 암울하다는 것이니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여당이 포퓰리즘의 최대치인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무분별하고도 무리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막장 선거'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선거 승리가 중요하다고 해서 합의를 깨고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집권당의 의식 수준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더라도 일단 표를 얻고 보자는 정도라면 절망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번 보궐 선거가 여당 단체장들의 성추문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겸허하게 임해도 모자랄 판인데 오직 승리만을 위해 극악스럽게 온갖 수를 쓰고 있다. 국민의힘 역시 '막장 선거'의 동참자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대구경북 지역민의 가슴에 심한 상처를 냈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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