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김채영 모친 故 황순덕 씨

입력 2021-01-31 15:04:10

1983년 김채영 씨의 결혼식 사진. 본인 제공
1983년 김채영 씨의 결혼식 사진. 본인 제공

세상에 엄마보다 더 좋은 그늘이 어디 있겠어요. 슬픔이 슬픔인지도 모르던 나이에 엄마를 여의었습니다. 엄마의 부재는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였어요. 늘 그러셨잖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고요. 그러면서 노름방에 붙박여 계신 아버지 찾으러 갈 땐 꼭 나를 데리고 갔지요. 캄캄한 밤에 호롱불 들고 가는 엄마 뒤를 따르면 등골이 오싹했는데도 아무 소리 못했죠.

무섭다는 말을 뱉으면 더 무서울까봐 겁이 났어요. 돌이켜보니 엄마랑 단둘이 밤마을 다닌 추억이 되었네요. 좋은 성적 받으면 돌아오실까, 공부만 했습니다. 100점을 맞아도 상을 타도 우등생이란 소문이 동네에 자자해도 엄마는 꿈에서조차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으시데요. 무심한 엄마지만 그게 당신의 본심은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가족 앨범을 펼칩니다. 결혼사진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네요.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예식장은 완전 울음바다였어요. 큰아버지 손잡고 들어가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평생 흘릴 눈물 다 쏟아내자 작정한 듯이요. 그날의 면사포는 눈물이 수를 놓아 더 눈부셨을 거예요. 울지 않은 하객이 없었다고 들었어요. 엄마 보고 싶으면 이모 보라는 옛말이 있다면서 힘들 때 찾아오라던 이모 말이 아직도 쟁쟁해요.

첫애를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몸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산후병을 얻었지 뭐에요. 둘째는 이모가 오셔서 꼬박 한 달을 바라지해주셨지요. 산모는 무조건 몸을 따뜻이 해야 된다며 삼복인데도 연탄불을 피워 강제 찜질을 시키더라고요. 이모는 부뚜막에서 웅크리고 밤을 새며 엄마 고생을 대신 하셨답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생겼어요. 정직하게 살아야 부모가 욕먹지 않는다는 강박관념 비슷해요. 손해 보고 살아라, 베풀고 살아라, 하시던 할머니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엄마의 바람대로 훌륭한 사람은 못 되었지만 공부는 할 만큼 했어요. 뒤늦게 석사학위도 받고 대구문화재단의 기금으로 수필집도 냈으니 엄마 딸 장하지요? 병약하고 여렸던 영이가 아니에요. 이제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되는데 늘 돌봐주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죄는 지은 대로 가고 복은 닦은 대로 간다던 할머니 말씀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숨통을 열어주는 건 문학이고 영원한 내 편인 부모님이 글밑천이에요. 숨은 독자가 조력자다 생각하면 든든해요.

엄마는 아버지 다시 만나서 행복하신가요? 비록 우리 모녀간의 인연은 짧았으나 그쪽 세계에서는 아프지 말고 즐겁게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반 한량으로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이셨던 아버지지만 아버지 사랑은 오직 일편단심이었던 거 아셔야 돼요. 요즘 복막염은 병도 아니라는데, 엄마가 황망히 가시자 아버지 인생도 엉망으로 꼬였지요. 새엄마가 두 분이나 오셨는데도 끝내 화합 못한 채 조강지처를 따르고 말았잖아요.

사실 철없던 시절엔 아버지 원망 많이 했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아버지도 가여워요. 5년 전에 동화사 봉서루에 부모님의 영구위패를 모시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고즈넉한 절간을 울리는 풍경소리만 들어도 부모님의 기척인 양 반갑고 푸근하답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 기일이 며칠 안 남았군요. 그때 봉서루에서 뵙고 쌓인 그리움 풀기로 해요. 그럼 오늘은 이만 갈음할게요. 보고 싶은 울 엄마, 안녕히 계세요.

엄마의 고명딸 영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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