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그림읽기] 도경득 작 'Arrowy' 560X380mm Digital Print(2013년)

입력 2021-01-26 11:41:44

삶의 슬럼프를 화살로 날려 버려라

도경득 작
도경득 작 '쏜살'

현대미술을 접할 때 좀체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 간혹 있다. 아니 많다. 마르셀 뒤샹은 공장에서 찍어낸 변기를 엎어놓고 그 옆에 'Fountain'(샘)이란 작품제목을 붙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자전거 바퀴만 달랑 전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대미술은 출품 작가들의 심오한(?) 생각이나 동시대 예술성의 변화, 새로운 창작을 위한 작가적 도발성을 모르면 솔직히 감상하기에 적잖은 불편함을 느끼기 일쑤다.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예술가 루치오 폰타나는 전체 화면을 붉은 색으로 도배한 캔버스에 세 번의 칼자국을 낸 다음 '공간 개념, 기대'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찢긴 자국 자체를 미술 작품으로 낸 것이다. 그리곤 폰타나는 "캔버스에 구멍을 뚫는 순간, 나는 폐쇄적인 미술공간을 넘어 무한에 이르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 드넓은 우주로 이어지는 새로운 예술적 차원을 말이다"고 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칼로 화면을 찢는 순간 2차원적인 평면회화에 깊은 공간감이 생기면서 3차원적 회화로의 도약을 맛보았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작품을 1천여 점 이상 남겼다.

두 사례에 비하면 도경득의 작품 'Arrowy'(쏜살)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준다. 화면 아래 세 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그 위로 엷은 붉은 색을 칠한 하늘은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다. 하루 중 시간대로 치환하면 석양에 물든 하늘을 닮았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화살은 오히려 앙증맞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화살 끝에 매달린 작은 물건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추측컨대 작가의 소원이나 떨쳐버리고 싶은 심리상태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른쪽 아래 홀로 핀 하얀 꽃은 작가가 지향하는 과녁으로 보인다. 과녁과 목표는 동의이어(同意異語) 아닌가. 도경득은 화가의 삶에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회화는 말 그대로 그림이다. 작가는 오감 중 시각에 비친 유·무형적 대상인 피사체를 주관적으로 해석,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화폭에 옮긴다. 다시 말해 작업의 실체는 거울에 비춰진 자신과 같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화면 속 날아가는 화살은 작가 자신일 수도 있다.

도경득에 따르면 그는 나이 서른 쯤 우연히 대덕산 활터를 찾아 한동안 활 쏘는 매력에 빠진 적이 있다. '쏜살'은 이때 경험한 일이 뇌리에 남아 허공을 날아 과녁을 향하는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그린 작품이다. 원래 기억이란 괴물은 삶이 힘들었을 때 더 잘 각인되는 법이다. 아마도 작가는 삶의 슬럼프에서 날아가는 화살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 속 응어리진 것이 있다면, 도경득의 '쏜살'을 떠올리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화살에 그것을 실어 저 멀리 날려버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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