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단편영화를 향한 믿음

입력 2021-01-26 11:29:02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지난 13일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올해부터 페스티벌 형태의 영화제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영화제의 형태와 지속 여부에 대해 고민하겠다고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영화제는 19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단편영화제 중 하나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다니 독립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상영하는 등 2020년의 우여곡절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못내 아쉽다. 한편으로는 좁디좁은 단편영화의 저변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장편영화는 소설, 단편영화는 시'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단편영화가 지니는 가치는 분명하다. 길이가 짧기에 메시지는 더 강렬하고 스크린 속 에너지는 더 치열하다. 보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며 감독의 개성이 도드라진다.

영화 '곡성'을 만든 나홍진 감독의 초창기 단편영화 '완벽한 도미요리'나 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 '지리멸렬', 단편연출작 네 편을 묶어 데뷔한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거장들의 초기작이어서가 아니라 단편영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감독의 세계관이 거칠지만 직접적으로 투영되어 있어 창작자의 본연에 더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가기 위한 습작'으로 치부하는 단순한 시각은 위험하다. 단편영화는 영화라는 문화생태계의 근간과도 같다. 짧고 강렬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놀라운 에너지가 없었다면 '기생충'을 위시한 K-시네마의 약진도 없었을 것이다.

대구에는 올해로 22년째를 맞는 대구단편영화제가 있다. 단편영화 연출자 중 대구단편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은 이를 손에 꼽을 정도로 전국적인 인지도도 높고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 '벌새'의 김보라 감독처럼 대구단편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은 차세대 신예 감독도 많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대구의 자랑스러운 문화자산인 셈이다.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중단은 크나큰 비극이지만 대구단편영화제의 역할은 그만큼 더 막중해졌다. 국내에 20년 넘게 단편영화제를 지속하고 있는 곳은 단 두 곳뿐으로, 대구단편영화제가 그 중 하나다. 이제는 대구가 선도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지면을 빌려 예산지원으로 영화생태계 근간을 지탱해주고 있는 대구시에 감사드린다. 헌신적인 노력으로 21년을 지켜온 영화제 실무진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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