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혹한 속 이주노동자의 죽음

입력 2021-01-26 12:23:49 수정 2021-01-26 13:42:46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영하 18도의 강추위가 몰아친 지난달 20일, 비닐하우스에서 '사람'이 홀로 죽었다. 사철 무더운 캄보디아에서 온 서른 살 이주노동자 속헹의 차디찬 주검은 추위를 피해 거처를 잠시 옮겼던 동료들에 의해 발견됐다. 경기도 포천의 농장에서 4년 10개월간 열심히 일한 그녀는 3주 뒤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국과수의 부검 결과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이었다. 동사(凍死)가 직접 사인이 아니라고해서 그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장받지 못한 주거권과 건강권의 문제가 덮일 수는 없다. 냉기 가득했던 숙소가 그녀의 병세를 급격하게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프랑스 등의 연구진이 식도정맥류 파열 환자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 겨울철에 발병이 가장 많았다.

증상이 있었지만 그녀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처음 3년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고, 보험료를 내기 시작한 2019년 이후에도 병원 문턱을 밟기 어려웠다. 그녀의 죽음은 이 땅 이주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당수 이주노동자는 냉방 장치가 없는 컨테이너에서 폭염과 싸우고 난방이 부실한 비닐하우스에서 한파를 견딘다. 실외 재래식 간이 화장실 때문에 밤이 무섭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숙소의 70% 이상이 가건물이었다. 2018년 국내 이주노동자의 주거지를 둘러본 파르하 유엔 주거권 특보는 "국제인권법에 따른 최저 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안전성마저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건강했던 그들은 이주로 인한 스트레스와 중노동으로 몸과 마음에 병을 얻는다. 하지만 제때 치료받기 어렵다. 일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 건강보험 혜택이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치료비 부담에 아파도 혼자 끙끙 앓는다.

그들은 생명까지 위협하는 작업 환경에서 일한다. 매년 2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한다. 2017년 경북 군위의 양돈장 정화조 청소를 하던 20대 네팔 노동자 두 명은 황화수소에 질식사했다. 그들은 안전 장비는커녕 마스크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주거환경을 가질 권리, 아플 때 치료받을 권리, 안전한 작업 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인권'보다 '이윤'을,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나라로 비치고 있지 않을까?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이주노동자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주거 환경을 서둘러 보장해야 한다. 안전의 사각지대인 그들의 일터도 점검해야 한다. 아울러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산시보건소가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무료 건강 검진은 좋은 예다.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 극작가 막스 프리슈의 희곡 '시아모 이탈리아니'의 대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사람들이 지녀야 할 책무를 함축하고 있다. 그 '사람'들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속헹의 명복을 빈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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