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우릴 몽둥이질 했지만 원망 말아야…" 中 화웨이 회장 메시지 왜 이제 공개?

입력 2021-01-24 18:26:53

런정페이 중국 화웨이 회장. AP 연합뉴스
런정페이 중국 화웨이 회장. AP 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의 뉴스룸 사이트에는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회장이 지난해 6월 작성한 장문의 사내 메일 원문이 올라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런 회장은 이날 화웨이 내부 전산망에 올라온 연설 동영상에서 자사에 대한 미국발 규제와 관련, "처음엔 우리가 뭔가 규정을 지키지 않은 줄 알고 자체 감사를 벌였다. 그러나 2·3차 타격이 계속된 뒤엔 그게 아닌 걸 깨달 깨달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런 회장의 글은 미국의 규제로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등 협력 업체에서 반도체 수급이 끊기기 약 3개월 전에 작성된 글이다. 런 회장은 4천자가 넘는 메일에서 죽음을 앞둔 고통을 호소하며, "그럼에도 생존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런 회장은 메일에서 "미국에 처음으로 맞았을땐 우리가 정말로 어떤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반성과 함께 자정을 하려고 했다"며 "하지만 미국이 내려치는 몽둥이의 강도가 세질수록 우리가 무언가 실수한게 아니라, 미국이 그저 우리를 때려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썼다.

이어 "하지만 생존을 향한 갈망이 우리를 더 굳세게 만든다"며 "화웨이의 모든 임직원은 '한 보 전진으로 죽을지언정, 반 보 후퇴로 살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해당 메시지가 6개월이 지나서야 공개된 것과 관련, SCMP, 중국 신화망 등 외신은 "화웨이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반년 전에 작성된 '과거의 고통'을 꺼내들었다"며 "미중 관계 회복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바이든 정권의 정책 변화를 끌어내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다양한 방식으로 화웨이를 제재해왔다.

미 정부는 2019년 5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화웨이를 상무부의 관리대상으로 지정해 미국산 제품·기술의 공급을 제한했고, 이보다 앞선 2018년 12월엔 캐나다 당국이 미국 측의 요청으로 런 회장의 딸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하기도 했다. '화웨이가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미 국무부는 작년 8월엔 지식재산권·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화웨이 등 중국 통신업체들을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모바일 앱·클라우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클린 네트워크' 구상을 발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퇴임 직전인 이달 15일까지 화웨이에 반도체칩을 공급해온 인텔·키오시아(옛 도시바메모리) 등에 납품 허가 취소를 통보하며 화웨이를 재차 압박했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플래그십 매장으로 선전에 처음으로 개점한 직영점. 영업장 밖에 고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화웨이의 세계 첫 직영점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플래그십 매장으로 선전에 처음으로 개점한 직영점. 영업장 밖에 고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화웨이의 세계 첫 직영점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과감한 사업 조정, 공격적인 연구개발"

이날 중국 왕이닷컴은 "이번 메일을 통해 화웨이가 지난해 규제를 앞두고 어떤 생존 전략을 짰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처음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런 회장은 "이제는 우리의 연구개발 능력을 집중해야할 때"라며 "실현성이 낮은 분야의 서비스는 과감하게 잘라내야한다"고 했다.

실제로 화웨이는 런 회장의 이 같은 주문이 나온지 약 5달이 지난 작년 11월, 중저가 스마트폰을 만드는 세컨드브랜드 '아너'를 매각했다. 반도체 수급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무리하게 스마트폰 사업 규모를 유지할 수 없다는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는 "당장은 주력 상품을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터넷 응용분야로 옮기고, 이 같은 서비스로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는 '돌격대'를 운영해야 한다"며 "매출이 유지되어야 미래 기술에 대한 개발 역시 지속할 수 있고, 이 밑천으로 우리는 훙멍과 같은 OS(운영체계)를 세계 경쟁무대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화웨이는 5G와 스마트폰 사업에 타격을 입은 후 핵심 사업방향을 미래 스마트카 플랫폼 개발과 같은 AI(인공지능) 분야로 옮기고 있다.

화웨이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3회 국제인공지능대전에 참가해 어센드 컴퓨팅 솔루션 등 AI 기반의 솔루션과 제품을 전시했다. 연합뉴스
화웨이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3회 국제인공지능대전에 참가해 어센드 컴퓨팅 솔루션 등 AI 기반의 솔루션과 제품을 전시했다. 연합뉴스

◆미국 너무 원망 말고 그들에게 더 배워야

런 회장은 이번 메일에서 이례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 기술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미국·유럽·일본·러시아 등이 개척한 과학기술분야는 인류 문명 발전의 방향을 제시한 등대와도 같다"며 "마치 2000년 전 공자를 우리가 여전히 존중하듯, 이들 선진국에 대한 존경심은 있어야한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에 대해서도 "너무 원망하지 말아야하며, 여전히 등대 같은 미국으로부터 배워야할게 많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 등은 "런정페이의 메일은 구체적으로 바이든 행정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좋은 말로)워싱턴에 구제 조치를 요청하는 것으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다만 런 회장은 미국의 기술을 칭찬하면서도 "(선진국의 기술에 의존한)우리의 전략은 틀렸던 것으로 증명됐다"고도 했다. 그는 "현실적인 생존을 위해선 많은 분야에서 자립을 해야한다"며 자체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이메일에서 여러차례 강조했다.

한편 이번 메일에서 화웨이가 미국의 규제를 겪으면서 직원 월급을 동결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려졌다. 런 회장은 "모든 임직원들은 3~5년 간의 임금 동결을 견디면서도 자기계발을 늦추지 말길 바란다"며 "회사의 어려움에 자체적으로 직급을 낮춘 고위 임직원 수백명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팀이라는 방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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