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16세였을 때 집에 책이 몇 권 있었나요? 단 신문, 잡지, 교과서, 참고서는 제외합니다."
경제협력기구개발기구(OECD)가 2015년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위해 31개국 16만 명의 성인에게 던진 질문이다. 조사 결과 가구당 책 보유량 1위는 에스토니아로 218권이었으며, 일본은 22위로 102권, 우리나라는 25위로 91권으로 나타났다. 31개국 평균은 115권이었다.
이 자료를 근거로 학자들은 청소년기에 책에 많이 노출될수록 인지 능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였다. 인지 능력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가구당 책 보유 수량은 아주 많을 필요는 없지만 350권 정도까지는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필자의 고향 집에는 40년도 더 지난 빛바랜 60권짜리 전집이 아직도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다. 한국문학, 세계문학 각 30권으로 구성된 전집은 필자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책 외판원으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그 책을 구매하기 전까지 변변한 책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평소 자식들과 살가운 대화라고는 전혀 나눌 줄 몰랐지만, 자녀의 학업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 내내 방에서 뒹굴거리며 60권의 전집을 거의 다 완독했다. 그 덕분인지 학창시절 국어 성적은 다른 과목에 비해 꽤 좋았다. 훗날 대학을 다니면서도 친구나 선배들과 문학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도 주눅이 들거나 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독서계와 출판계는 1980년대까지는 전집류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웬만한 가정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아동문학, 한국문학, 세계문학, 백과사전 등의 전집 한두 질은 갖추고 있었다. 회사의 사장실에도 양장본으로 된 전집이 멋지게 진열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외판원이 직접 가정이나 사무실을 방문하여 책을 보여주며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는 전집보다는 단행본의 출판량이 늘어났다. 책 구매도 독자가 직접 서점을 방문해서 낱권으로 구입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몇 년 전 '거실을 서재로'라는 캠페인이 펼쳐진 적이 있었다.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책장과 테이블을 배치해 서재로 만들어 가족들이 함께 독서하고 대화하는 장으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 캠페인은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되고, 부모와 자녀의 대화 시간도 늘어난다는 효과 때문이었다.
작년부터 서재 만들기 트렌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못한 자녀들과 부모가 함께 '집콕 독서'를 하기 위해 집에 '작은 서재'를 꾸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책장과 테이블 주변을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로 꾸미는 '데스크테리어'(데스크+인테리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번 참에 집집마다 거실에 멋있는 서재를 꾸미고 책장에 책을 가득 채워두면 어떨까. 자녀들이 그 책을 당장 읽지 않더라도 책에 노출된다는 것만으로도 인지능력이 높아진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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