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 범유진 외 4인 / 안전가옥 펴냄
히어로 소재삼은 공모전 입상작… SF 요소 빠질 수 없어
비주류 히어로 전면에 내세워… 가벼운 능력이 어디 있으랴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공모전 당선작 5편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스토리 제작소로 자리 잡은 '안전가옥'이 앤솔로지 시리즈로 낸 여섯 번째 책이다.
영상물을 염두에 둔 듯 시각적으로 잘 그려지는 이야기 전개다. 금방이라도 시나리오로 변신할 것 같은 흐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투자배급사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과 함께 기획한 공모전이었다.
신인작가 등용문으로 제한한 공모전이 아닌 덕에 눈에 익은 작가들도 보인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천 개의 파랑'으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은 천선란 작가의 단편 '서프 비트'가 당선작으로 함께 실렸다. 안전가옥 앤솔로지에 단골로 등판하는 범유진 작가도 눈에 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말처럼 '튀지 않으려는 마음과 튈 수밖에 없는 포지션 사이에서 싸워 나가야할 운명',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의 운명처럼 짜잔하고 등장한 당선작가 일부는 영화판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짧은 문장 호흡, 반전 있는 구성 등 영화 시나리오가 가진 장점을 소설에도 십분 뿜어낸다.
다 읽기 전에 책을 덮지 못하는 '책갈피가 불필요한 책'까지는 아니지만 발랄한 문체, 상상력, 전개 방식이 유기적으로 합체돼 독자는 쉼 없이 읽어갈 수밖에 없다. 등단한 지 오래지 않은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어선지, 공모전의 의도를 파악한 작가들의 노련미 덕분인지 독자는 알 턱이 없다. 그저 재미있게 읽을 뿐이다.

과학적 배경지식 없이 이해하기 힘든 SF판타지와 거리가 멀다. 그냥 판타지다. 팀 버튼 감독의 '미스 페데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영화 역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에 모인, 너무 가벼워 하늘로 떠서 납으로 만든 신발을 신는다든지, 시간을 되돌린다든지, 유령을 볼 수 있다든지 하는 초능력 아이들과 얼추 비슷하다.
그러나 깨놓고 말해 이 소설집 속 주인공들은 능력자로 불러도 되는 건지 의아할 만큼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들이다. '제아무리 감추려해도 능력은 드러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이 소설집은 단호하다. '낭중지추'도 허락지 않는다. 외려 능력을 숨기기에 골몰한다. 단지 능력자들은 서로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유사시 힘을 합쳐 거악을 막아내고 일반시민으로 복귀한다.
맛보기로 몇 개만 나열해볼까. '시가 뭐꼬'의 저자들인 칠곡 가시나들처럼 한글을 깨우쳐 세상이 달리 보이는 시골 아낙 오미자 할머니에게 생긴 '소원성취력'은 '적어야만 실행되는 능력'이다. 알지 못했던 능력을 깨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캡틴 그랜마, 오미자')다. 자신의 급성 배변욕구를 상대에게 전가시키는 능력 같은, 독창성만큼은 엄지를 주고 싶은 것('사랑의 질량 병기')도 있다.
초능력자를 찾아내 교육하는 국가 비밀기관 '하우스'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남녀 고교생의 미스터리 '서프 비트(SURF BEAT)', 주변인 모두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능력자의 악행을 막으려 또 다른 능력자가 등장하는 추리물 '피클(FICKLE)', 초능력 보유자들의 조우와 연대가 빛을 발하는 '메타몽'까지 5편의 소설이 주변부에서 티나지 않게 활약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로 소개된다.
읽는 동안 독자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숨은 능력이 있는지 상상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설령 그런 능력이 없어도 상상력 자극제로 충분한 소재들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물맛, 커피맛, 와인맛, 폭탄주 비율 감별하는 것도 엄연한 능력이다. 아마 대부분은 누군가가 발견해주기 전까지 자신의 특별함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291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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