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기획
오는 20일로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된다. 누적 확진자 7만명, 사망자 1천200명에 이르는 동안 우리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우울증, 이른바 '코로나 블루'(blue)를 호소하는 시민들도 점점 늘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달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대담에선 백용매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대구 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대구시 감염병관리지원단 자문교수)로부터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봄 1차 대유행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상황은 어떤가
백용매=대구경북만 보면 많이 나아졌다. 정부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을 가동하면서 대구 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경우 직원 1인당 하루 30명 넘게 자가격리자·격리해제자 상담을 했는데 지금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일반 국민들의 정신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대구 동구지역 전통시장 상인 18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7.3%가 우울로 인한 심리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심리방역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이경수= 현재는 환자 치료에 크게 문제가 없다. 코로나19 병상도 여유 있는 편이라 위기는 넘긴 것 같다. 그러나 감염병 상황이 계속될 텐데 혹독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지역의 학습효과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우리 사회가 변하다 말까봐 걱정이다. 공공의료의 취약성을 보강하자는 여론이 높지만 몇 년 뒤에는 왜 그런 곳에 돈 쓰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사회체계가 안전하게 바뀌려면 성찰과 반복적인 교육훈련을 통한 기억의 유지가 필요하다.
▶방역전략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년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이= 감염병 통제는 일부 공공병원만으로는 역부족이란 사실을 절감했다. 극복하려면 민간과 공공이 연대해야 한다. 지역의 여러 기관 사이에 협력체계가 갖춰져야 폭발적 비상상황에 견뎌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공(公共)이란 단어 그대로 지역 의료시스템을 공공과 민간이 함께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전파력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독성까지 강해지거나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적어도 조만간 공급될 백신 주사를 맞았다고 조급함에 마스크를 벗는 것은 금물이다.
백=여러 영역에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리셋(reset)이 필요하다.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기회로 삼아야 이번 겨울이 바이러스 공포에 떠는 마지막 겨울이 될 것이다. 재미 있는 사실은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가족의 가치를 코로나19 덕분에 재발견하게 됐다는 분석이 많지만 청소년들을 상담하면 오히려 가족 관련 고민이 늘었다고 한다.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증가, 사소한 일로도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서로 배려하는 말과 행동이 절실하다.

▶백신이 판도를 일거에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백신 생산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승부처는 국내 생산 또는 국내 수입 이후 수송·보관·접종에 따른 부작용 관리 등이다. 불필요한 오해와 혼선, 가짜뉴스도 막아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매뉴얼이 정해지겠지만 지침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현장 대응은 지방자치단체가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모든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집단면역이 생기려면 접종률이 올라가야 한다. 어린이·임산부 등 백신 접종이 어려운 인구를 감안하면 나머지 국민 90%는 신속하게 백신을 맞아야 한다.
백=심리방역 측면에서 말한다면 코로나 블루와 '코로나 앵거'(anger)를 연계한 지원정책이 시급하다. 감염 자체에 대한 불안, 공포보다는 활동 제약에 따른 불이익, 소외감을 참아야 하는 상황에 분노, 적대감을 느끼는 것이 장기간에 걸친 감염병 재난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이다. 실제로 2017년 포항지진 때와 비교해 보면 피해자들의 반응에서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팬데믹 초기에는 확진자·자가격리자애 대한 일사불란한 대응이 효과를 거뒀지만 이제는 행정당국이 코로나 블루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시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졌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백=정신건강 관리는 어느 분야보다도 대면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여겨져왔다. 인공지능 시대의 영향을 가장 덜 받을 직업으로 정신과 의사가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비대면이 뉴 노멀이 되면서 획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우선 온라인을 통한 자가검진 체계가 활성화되고, 여가시간을 활용한 심리 이완 프로그램 개발이 촉진될 것이다. 또 원격진료나 화상상담에 대한 욕구가 증가할 것이다. 소외감을 느끼는 어르신들의 우울증·치매 예방을 위한 반려로봇이 보편화되고, 가정 내 갈등 해결에 대한 교육·상담 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이= 건강 문제를 질병 치료를 넘어 안전의 문제,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질 것이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막연히 잘 작동할 것이라 생각했던 의료를 포함한 생명보호장치의 톱니바퀴들이 모두 멈춰선 탓이다. 노인요양병원, 투석 환자,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보호할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비대면 진료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각종 장비와 비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고, 의료서비스 격차가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어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고 풍토병이 되리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면?
백=방역당국이 확진자 수만 너무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팬데믹 장기화에 따른 우울감, 불만을 경시해선 안 된다.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울러 코로나19에서 회복된 사람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중국 우한에서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후유증은 완치 6개월 이후에도 나타난다고 보고됐다. 회복 환자들은 우울감, 피로감과 수면장애를 주로 호소했다. 이 밖에 바이러스와 사투를 이어가고 있는 의료진의 심리적 건강 회복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팬데믹 영향으로 중앙 집중 경향이 커지면서 지방의 역량 강화와 분권이 뒤로 밀릴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현장에서 대응이 잘 되지 않으면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그럴듯한 대책을 내놓아도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해 봄 대구경북 대확산 당시 중앙정부에서 지역에 지원인력을 보내왔는데 며칠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국가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매년 하는 을지훈련조차 무의미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과 지방이 협력해서 재난에 대응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대담자 프로필
백용매 대구가톨릭대 교수. 경북대 박사. 대구 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
이경수 영남대 교수. 영남대 박사. 대구시 감염병관리지원단 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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