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1년 전 이맘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소위 마스크 대란이 시작됐다. 마스크 가격이 폭등하고, 요일을 정해 마스크를 사야 하는 낯선 상황을 우리는 맞이했었다. 다행히 이런 비극적 상황이 여름이 끝나기 전 해소됐는데 3, 4개월 만에 국내 마스크 생산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저개발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도 아직까지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용품 부족에 시달린다.
전 세계 의료용 마스크 생산량 1, 2위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지금까지 의료용 마스크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비행기와 인공위성까지 만드는 미국은 왜 우리처럼 빨리 마스크 생산량을 늘릴 수 없었을까?
참고할 만한 하나의 사례가 있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 기업 애플은 2010년대 들어,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PC와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CEO인 팀 쿡이 직접 생방송에 출연해 중국에서 위탁 생산하던 대당 3천달러짜리 최고급 PC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생산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공장을 세우고, 생산 시설을 갖춘 후, 본격 양산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애플은 큰 난관에 봉착했다.
PC 부품으로 특수한 모양의 나사가 사용되는데, 미국 오스틴시에서는 이를 구할 수 없었다. 오스틴에 있는 모든 공장을 다 뒤졌지만, 적정 수량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애플은 손실을 감수하고 생산 일정을 미뤄야 했고, 중국에서 나사를 수입한 후에야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은 중국과 그야말로 무역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애플의 사례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그런 노력이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것은 제조업의 핵심에 공급사슬(supply chain)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막대한 자금 투자 능력이 있더라도 공급사슬이 무너지면 제조가 불가능하고, 공급사슬을 구축하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게 아니기에 미국은 우리와 달리 빠르게 마스크 생산량을 늘릴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대구경북은 제조업 공급사슬이 잘 갖춰진 지역 중 하나였다. 섬유산업과 전자산업이 지역에서 성장한 것도, 완성차 기업은 없지만 수많은 자동차부품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지역에 제조업 공급사슬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의 제조업 공급사슬은 여러 측면에서 큰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급사슬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과 인재의 재생산과 혁신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 공급사슬은 외형적으로는 부품과 부분품의 수요-공급 관계 또는 원청-하청 관계로 표현되지만, 그 속에는 기술과 인재가 숨어 있다. 지역의 장인급 소공인들은 점차 은퇴하고 있으나 이를 메울 사람은 부족하다. 심지어 있는 기술조차 전수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제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제조업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게을리해 온 영향이 적지 않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소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필요성이 대두되기 전까지, 적어도 지난 20년간 정부의 소재, 부품, 장비 분야 고급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나사 하나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던 애플의 사례처럼 한 번 무너진 제조업 공급사슬을 다시 세우는 것은 아주 어렵다. 지역에 존재하는 제조업 공급사슬이 와해되기 전에 체계적인 정책을 세워 빨리 움직일 필요성이 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자동차, 로봇 등 지역 핵심 제조업과 관련된 인력을 양성하는 '휴스타 프로젝트' 같은 사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세계적 제조업 분업 체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대구경북이 이러한 전환기에 세계적인 제조업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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