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동료 "잦은 고장에도 동국제강은 승강기 1년 넘도록 고치지 않아"
아내 "발견되기까지 걸린 6시간 동안 남편 고통 없었으면…"
"처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열심히 일한 남편이 너무 허망하게 떠났습니다. 고생만 하다 떠난 우리 남편 불쌍해서 어떻게…."
남편의 발인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아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에 떨리는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편 A(57) 씨는 지난 4일 경북 포항 동국제강 구내식당 화물용 승강기 끼임 사고(매일신문 6일 자 10면 등)로 숨졌다. 남편은 식자재 납품을 위해 오후 8시쯤 2.5t 화물차를 끌고 경산 집에서 칠곡 물류센터로 이동한 뒤 물품을 싣고 동국제강 등 포항 배송지 8군데를 돌고 다음날 오전 8~9시쯤 귀가한다. 이런 고된 일을 20년 동안 묵묵히 해왔다.
남편의 비보를 접했을 때 아내는 '차 사고'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동국제강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말이 나오자 '승강기구나'라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남편은 지난해 초 동국제강 식당 배송을 배정받아 일하며 "위험하고 힘들다"는 말을 한 번씩 꺼내곤 했다. 승강기 고장이 잦았고, 고장이 날 때면 쌀포대와 10㎏이 넘는 영업용 고추장과 된장은 물론 각종 야채까지 등에이고 2층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59㎏ 나가던 남편의 몸무게가 며칠 사이 4㎏ 넘게 빠졌다.
고장이 나도 승강기를 제대로 고쳐준 적은 없었다. 식당 영양사 등에게 문제 해결을 요청했지만 고장은 좀체 개선되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에게 하소연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에도 승강기가 작동하다 갑자기 멈춘 일이 발생했다. 당시 배송은 남편의 동료 직원이 하던 중이었다. 이날 동료는 새벽녘 전화해 비상 작동법을 물어봤다. 남편이 식당 측에서 작동법을 배워 알고 있었던 터라 걸려온 전화였다. 예전에는 승강기가 멈추면 식당 관계자가 알려주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전화조차 받지 않아 불필요한 작동법까지 남편이 익혀야 했다.
사고가 일어난 4일도 승강기는 물품을 싣고 올라가다 멈춰 섰다. 남편이 이를 확인하려는 사이 승강기는 아래로 떨어지며 머리를 쳤다. 아내는 생전 고생했던 남편이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상처투성이로 떠나야 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내는 "남편이 나갔다 오면 등에 멍이 남고 긁힌 자국이 항상 보였다. 정말 화가 나는 건 승강기가 고장 나면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식의 식당 운영 방식"이라며 "아무리 '갑을 관계'라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남편이 발견된 시간은 사고 추정시간에서 6시간이 넘게 지난 시점이다. 남편이 곧바로 정신을 잃고 숨을 거뒀으면 좋으련만, 오랜 시간 고통스러워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남편이 사고를 당한 것도 섬뜩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아빠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A씨의 친구이자 동료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힘들어도 불평 없는 친구였다. 오래 일했으니 2년만 더 하고 편하게 살자는 말을 지난달에도 만나 했는데, 이런 사고를 당해 비통하다"며 "동국제강처럼 큰 공장이 이런 낙후된 시설을 갖고 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유가족과 동료들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A씨가 숨졌지만, 연락조차 없다가 발인 전날 오전 겨우 찾아와 얼굴을 내민 동국제강의 모습에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연락이 없다가 매일신문 보도 이후 매스컴이 들끓자 떠밀려 온 것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회사 대표도 아니고 관리부장 등 2명이 왔다"며 "사과를 하긴 했지만, 전후 사정을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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