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들 중 '실록'(實錄)이 아닌 '일기'(日記)란 이름으로 재위 때의 역사가 기록된 왕은 두 명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노산군일기는 숙종 때 단종대왕실록으로 개편됐다. 이들 세 명은 왕위에서 폐위됐기 때문에 애초부터 실록청 대신 일기청을 열어 일기를 편찬했다. 일기란 왕위에서 축출된 임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옳지 못한 임금을 폐위하고 나라를 바로잡은 반정(反正)을 한 중종과 인조, 나라가 처한 병란이나 위태로운 재난을 평정한 정난(靖難)을 한 세조는 연산군과 광해군, 단종의 역사를 실록이 아닌 일기로 깎아내렸다. 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친문 세력이 태종, 세종으로까지 떠받드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들의 눈엔 찬란한 실록을 기록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 취임 이후 3년 8개월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혼란과 고통을 당한 국민 눈에는 일기일 뿐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문 대통령의 지난 궤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2017년엔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을 뽑아 문 대통령과 정권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2019년 공명지조(共命之鳥·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가 선정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것을 입증했다. 급기야 지난해엔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로 정권의 내로남불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추세라면 올해엔 더 험악한 사자성어가 등장할 판이다.
진중권·서민 등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인사들이 대거 반(反)문재인으로 돌아선 것도 문 대통령의 국정 실패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친문 성향 온라인 카페와 사이트에 문 대통령 비판 글이 올라오고 동조 댓글이 대거 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끔찍한 4년'이란 비판까지 나온 것에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지지자들이 태종, 세종이라고 우긴다고 문 대통령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없다. 국정에서 성과를 내 국민에게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지금껏 일기 쓰기에 그쳤던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실록을 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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