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특별법의 끝판왕

입력 2020-12-31 17:37:58 수정 2020-12-31 18:14:27

이창환 사회부 차장
이창환 사회부 차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38명이 서명해 국회에 제출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은 특별법의 끝판왕이다. 개발독재 시대에서도 보기 힘든 법안이다. 행정부 견제를 넘어 아예 무시한 입법 독재의 실체를 보여준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7조 3항) 조항부터 문제투성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도입된 예타 제도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예산 낭비 방지에 큰 역할을 했다. 6천여억원이 드는 대구도시철도 엑스코선 건설 사업이 기획재정부 예타 심사를 통과하는 데 무려 4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엄정하게 평가한다. 10조원 이상 재원이 투입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여당은 특별법을 앞세워 정책적·경제적 타당성 문제를 아예 무시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통제했다. 입법 독재와 다름없다. 입법부의 역할은 행정부 통제가 아닌 견제다.

논의의 절차와 의견 수렴 없이 특정 지역을 못 박아 특별법을 만드는 것도 상식에서 한참 벗어났다. 특별법은 동남권 신공항을 가덕도 일원에 건설되는 공항(2조 1항)으로 단정했다. 해당 지역이 공항 건설지로 적합한지 여부에 대한 논의를 원천 차단시켰다. 신공항을 건설해 국토균형발전과 지방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가덕도'라는 특정 지역을 위해 국가적 재원을 쏟아붓겠다는 발상이다. 인천국제공항 건설에 가속도를 붙인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 제정 당시 '인천'이라는 명칭이 없었다. 해당 법에 '인천'이 등장한 것은 법이 제정된 지 7년 8개월여 만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건설에서 운영까지 3개의 관련 법이 제정됐다.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법 ▷인천국제공항공사법 등이다. 앞의 두 법안은 공항 완공 뒤 개정·폐지됐다. 가덕도 특별법은 이 세 개 법안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토목계의 유신헌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을 원용했다지만 두 법안을 비교하면 가덕도 특별법은 한발 더 나갔다. 신공항 건설 사업자에게 법인세, 소득세, 관세, 취득세, 개발부담금, 교통유발부담금 등 17종류의 조세 및 부담금을 감면 또는 부과하지 않도록 했다.(16조) 신공항 건설 지역에 입주하는 기업과 연구기관은 최대 50년 동안 사용허가를 받고, 추가 50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19조)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세제 및 자금 지원도 가능하다.(25조) 특별법으로 향후 불거질 모든 걸림돌을 단번에 제거하겠다는 의도다.

가덕도 특별법을 시샘하는 게 아니다. 행정부를 왕따시킨 채 180석이 넘는 범여당이 '묻지마 특별법'을 만드는 게 국가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국가의 미래를 발목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한가를 묻고 있다.

이 특별법은 우리가 힘겹게 쌓아온 삼권분립 원칙, 법의 원칙과 행정의 합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근거한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입법부의 권한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민주주의에 젊음을 바쳤다고 자임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단언하건대 가덕도 특별법이 제정되면 판도라의 상자는 열릴 것이다. 앞으로 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이 특별법에 준하는 특혜를 요구할 게 뻔하다. 민주당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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