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쥐는 지고, 소는 뜨고

입력 2020-12-31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쥐는 지고, 소는 뜨는 시각이 다가온다. 2020년 경자년 쥐띠 해 달력은 오늘로 접고, 내일이면 2021년 소의 해 달력을 펴게 된다. 올해 쥐는 불운했다. 무슨 악업(惡業)을 지었는지 욕된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쥐는 흑사병 등 전염병 매개체로 소환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동양에서 쥐는 지혜의 동물로 해석됐다. 이는 미국에서 만든 영상물처럼 쥐가 고양이를 골탕 먹이는 꾀 많은 동물로 그려지는 점과도 통한다. 이런 긍정적인 모습 말고도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할 때 쥐가 등장하니 쥐의 두 얼굴인 셈이다. 특히 들쥐는 특정 인간 무리를 빗대어 낮추는 비유로 쓰이곤 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1980년 주한(駐韓)미군 사령관인 존 위컴이 말했다는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 지도자를 따른다"는 소위 '들쥐론' 같은 거북한 이야기가 그렇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권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된 발언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한국인을 비하한 사례로 손꼽힌다.

또 예수를 다룬 올해 출간한 책 '소설 예수'(나남, 윤석철 지음)에도 그런 글귀가 나온다. "유대인들은 말이오, 모두 들쥐예요, 들쥐! 대장 들쥐를 졸졸 따라다니는 들쥐!" 로마에서 파견된 빌라도 총독이 자신이 다스리는, 로마의 통치를 받는 지역에 사는 유대인에 대한 비하였다. 소설이지만 남의 민족을 폄훼하는 들쥐 비유는 위컴 사령관과 다르지 않다.

이런 부정적 들쥐 이야기처럼, 코로나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2020년 올해 주인공 쥐의 불행도 이제 해를 지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숨죽이고 보낸 어수선한 쥐의 한 해였다. 바로 그랬던 우울한 쥐의 해는 내일이면 달력 속으로 종적을 감추고 대신 듬직한 소의 해, 신축년을 맞는다.

소 하면, 논에 쟁기 끄는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느 쪽이 힘센지를 묻는 조선조 황희 정승에게 소가 들으니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해 황 정승을 부끄럽게 한 농부의 일화가 떠오를 만큼 단연 일하는 동물의 상징이다. 게다가 성실 근면 뚝심 등 긍정적 요소가 가득하고 죽어서까지 인간을 위한 희생으로 사람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런 소의 해를 맞아 코로나 백신까지 접종되니 쥐의 해에 누리지 못한 몫까지 만끽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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