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대구시사회서비스원 대표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고 정책적 대응에 나서야"
박한우 교수 "팬데믹으로 디지털기술 발전…초연결사회에 대한 두려움 커질 수도"
매일신문-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기획
지난해 12월 27일은 UN이 정한 첫 '국제 전염병 준비의 날'(International Day of Epidemic Preparedness)이었다. 미래 보건위기에 대비할 교훈을 얻자는 취지다. 이날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번이 마지막 팬데믹은 아니며, 전염병은 삶의 한 실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사회에 그야말로 큰 혼란을 끼쳤다. 백신 개발 이후 환호성이 나오기도 했지만 잇달은 변종 바이러스 탓에 올해도 전염병과의 사투는 불가피해 보인다. '포스트(post) 코로나'보다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더 큰 지금, 매일신문은 전문가 릴레이 대담을 통해 우리 앞에 닥칠 패러다임의 전환을 살펴본다. 첫 순서로는 김영화 대구시사회서비스원 대표(경북대 명예교수)와 박한우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를 초대했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어도비(Adobe)는 2020년을 'Ctrl+Z'(실행 취소 단축키)라는 한마디로 표현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코로나19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김영화=아무래도 일상의 파괴가 아닐까 한다. 팬데믹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전부 할 수 없게 됐다. 친구·친척을 만날 수 없고, 여행은커녕 집 밖에도 못 나간다. 생활의 균형이 깨지면서 시민들은 무기력해졌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박한우='레트로(retro·과거로의 회귀)의 부활과 배신'으로 요약하고 싶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신문·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열독률·시청률이 올라간 것은 레트로의 부활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모두들 집에만 있으면서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개인주의, 탈(脫) 중심화 트렌드에 따라 작은 정부가 돼야 하는데 방역이 최우선시되면서 오히려 큰 정부가 소환됐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는 그 이전의 사회와 완전히 구별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하다.
김영화=지난해 봄 '코로나가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란 한 칼럼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 글에서 바이러스는 '인류를 벌주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이기적 삶으로 지구가 병들어 가는데도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인류를 일깨우러 왔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간 활동이 제한되면서 자연은 본래 모습을 되찾고, 독감 같은 유행병도 현저히 줄었다.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박한우=팬데믹으로 디지털기술은 더 발전하겠지만 역설적으로 초연결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도 있다. 바이러스가 5G 전파를 통해 확산된다거나 전파가 인체 면역력을 약화시켜 팬데믹을 불렀다는 '5G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디지털사회에 대한 저항과 거부는 기술로부터의 해방, 인문주의 강화로 연결되리라 생각한다. 개인의 성장·발전을 정책 최우선 목표로 삼는 '휴머노믹스', 사람 중심의 민주주의를 일컫는 '휴먼크라시' 등이다.
▶화상회의, 재택근무가 대표적인 뉴 노멀(New Normal)로 떠올랐다. 일각에선 대면근무와 재택근무가 섞인 '하이브리드 미래'를 이야기한다.
박한우=재택근무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문조사가 적지 않지만 신뢰도에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답변을 선택하는 경향 때문이다. 재택근무의 문제는 모두가 플랫폼 노동자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문제가 개인에 귀속되면서 하향 평준화가 우려된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공간이었던 가정에 대한 재해석도 필요하다. 여성의 가사 부담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공간을 둘러싼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김영화=가정을 여성만의 공간으로 보는 시각은 오래 전 얘기다. 그런 프레임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웃음) 근무형태는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유럽에선 유연근무제가 이미 1970년대에 뿌리내렸다. 비대면이란 키워드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3D, 4D 화상회의까지 가능해진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가 촉발한 변화를 시민들이 기꺼이 수용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
▶그동안 오프라인의 보조 역할에 머물렀던 온라인 교육도 팬데믹의 화두로 떠올랐다. 교수로서 보는 원격 강의의 미래는?
박한우=온라인 수업은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학생들이 큰 피해를 받는다. 이를 극복하려면 시스템 보강이 필요한데, 아직 수업에만 급급한 현실이 안타깝다. 수업 자료들을 사회적으로 재활용하는 방안도 마련됐으면 좋겠다. 긍정적 측면이라면 대학들이 모두 사이버대학이 되면서 또래집단의 사회화에 따른 관계적 자본 형성이 불가능해져서 대학 서열이 무너지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김영화=비대면 교육의 강제적 체험은 당분간 이어질 형편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실력이 대면 수업에 비해 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재미있는 것은 원격수업 초기에는 교사들의 수업 부실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요즘은 원격수업이 계속되길 희망한다는 학생이 많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강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 것이다. 인공지능에 밀려 미래에 없어질 직업 중 하나가 교사라는 예측이 현실화되는 듯해 아쉽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해 한 기고에서 "코로나19로 시대착오적인 '장벽의 시대'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팬데믹이 세계화를 후퇴시킬까?
박한우=미국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처음 쓴 '비포(Before) 코로나 애프터(After) 코로나'란 표현이 많이 회자됐다. 알파벳 C가 들어가는 문명사의 변곡점에는 코로나(Corona)외에 Cold War(냉전), Computer(컴퓨터), Cryptocurrency(가상화폐) 등도 있다. 주목할 사실은 예전의 세계화가 개별적 존재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개념이었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연결돼 있으면서도 파편화, 고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화=기술 발달로 세계화의 개념은 로케이션(location)이 아니라 스페이스(space)로 바뀌었다. 전 지구가 동시권(同時圈)화되면서다. 인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어차피 겪어야 할 변화라면 문제점을 찾아 빨리 보완하는 게 바람직하다. 만나지는 못해도 인류의 협력, 유대가 더 중요해진 시대라는 이야기다. 지방 소멸 대신 중앙 소멸이 나타날 수도 있다. 정치가 아니라 바이러스 재난이 인간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재난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상처로 남는다. 팬데믹 시대의 약한 고리는 방역의 사각지대이기 이전에 자본주의의 아킬레스건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영화=지난해 봄 대구에서의 1차 유행 때 복지 사각지대가 정말 많다는 점을 실감했다. 사회서비스 체계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2019년 3월 전국 최초로 설립된 대구시사회서비스원이 서둘러 긴급돌봄서비스에 나선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런데 복지 틈새를 메우려면 안전망을 촘촘히 가다듬는 노력과 함께 돌봄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공공보건의료체계가 아니라 공공보건의료돌봄체계로 가야 한다. 돌봄은 시대정신이다.
박한우=데이터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계층은 데이터에서 누락된 사람들이다. 노숙인, 외국인 노동자 등등은 데이터화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경제활동이 적고, 데이터로서 가치가 적다는 이유에서 이들에 대한 데이터화는 더 늦어진다. 이들 데이터사회의 약자를 줄이는 데이터 복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에게 더 힘든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대담자 프로필
김영화 대구시사회서비스원 대표=독일 보훔대 박사. 경북대 명예교수
박한우 영남대 교수=미국 뉴욕주립대 박사. 행정안전부 공공데이터평가 지방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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