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보고 싶다면 눈을 감아라

입력 2020-12-26 14:06:12

책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눈에 보일까 보이지 않을까. (주)빅아이디어연구소
책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눈에 보일까 보이지 않을까. (주)빅아이디어연구소

광고에는 정답이 없다. 수학 문제처럼 근의 공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이디어의 공식'에 넣고 대입하면 답이 나왔으면 좋겠다. 애석하게도 광고에는 그런 공식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수많은 오답을 제시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장 정답 같은 오답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광고주 앞에서 프리젠테이션 하기 직전까지 아이디어를 찾는 이유다. 100점짜리 아이디어는 없으니 100점에 가장 근접한 것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천시교육청에서 '독서 광고'를 의뢰해왔다. 사실 독서라는 주제는 흥미롭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숙제이다. 너무 착하게 광고하면 '나를 가르치는 공익광고구나'라며 외면 받는다. 못되게 광고하면 '무슨 교육청 광고가 저래?'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었다.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우리나라 독서 실태였다. 3년 전 우리나라 국민독서실태 조사를 살펴봤는데 1년간 책을 한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국민의 40%였다. 10명 중 4명은 아예 1년에 책 한권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좌절이었다. 국민의 40%를 무슨 수로 설득시킨다 말인가.

우리 팀은 지금이 코로나 시대인 것에 착안했다.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된 콘텐츠를 찾아보았다. 그 속에 사람들의 욕구가 충만해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중 하나가 해외 관광 명소를 유튜브로 감상하는 것이었다. 해외여행은커녕 집에만 있는 답답함을 시원한 영상으로 푸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이야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파리의 에펠탑을 감상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것도 방구석에서 말이다. 시각적인 욕구의 힘은 이토록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더 무서운 것을 찾고 싶었다. 더 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무섭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다. 눈으로 보는 유튜브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무서울 거라고. 글자를 보고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각적인 것보다 더 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주)빅아이디어연구소
시각적인 것보다 더 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주)빅아이디어연구소

방구석에서 실리콘벨리의 AI 기술을 상상할 수 있다면, 에펠탑과 개선문을 생각할 수 있다면,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가 있었다. 바로 책이다.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인간을 무한히 상상케했다. 돈이 없이도 비자가 없이도 마스크가 없이도 우리는 자유롭게 가상의 공간에서 헤엄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책의 가치였다.

아이디어의 힘은 그 시대를 이용한다. 즉, 그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는 말을 했을 때 힘을 받는다. 환경오염 이슈가 있다면 환경에 관한 컨셉이 힘을 받는다. 경제 위기라면 광고에선 경제를 말해야 한다. 지금이 코로나 시대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번 광고는 독서와 코로나를 연결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카피가 이렇다.

'독서는 가장 안전한 여행이자, 위기를 이기는 지혜로운 백신입니다'

인천의 아이들이 이 카피를 가슴에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정답을 암기하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헤엄치기를 바란다. 그곳으로 가는 문이 책의 첫 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리적으로 책은 단순히 불에 타는 종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치가 집중해보자. 책은 우리의 창의성에 불을 붙여 인간의 호기심을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도구이다.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붙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주)빅아이디어연구소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붙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주)빅아이디어연구소

(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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