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칼럼] 연말, 세 번의 법원 '소신 판결'이 '다행'인 이유

입력 2020-12-26 13:12:08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법원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법원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사태 이후 양심 있는 국민들의 심사를 괴롭혔던 문재인 정부 '독선'과 '독주'가 늦게나마 법원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다행이다. 개인적으로 12월 1일 서울행정법원 조미연 판사가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직무정지 집행에 제동을 건 것은 정말 의외였다. 조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계열 판사라는 보도에 결국 '코드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의 결과였다.

곧이어 조국 장관 부인 정경심이 재판에서 법정구속된 것은 더욱 놀랄 일이었다. 1년여가 넘는 재판 과정에서 정경심과 조국 지지세력이 보인 '악다구니'가 기가 찼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과 강성 패거리들의 기세에도 법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뒤이어 윤 총장에 대한 2개월 직무 집행정지를 기각하는 결정까지 나오자 법원이 다시 보였다. '앙앙불락'이던 정치가 법원에 운명을 맡긴 꼴이지만 사필귀정이란 생각에 안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조미연 판사의 판결 이후 추미애와 여권의 '칼춤'은 더욱 노골화됐다. 법원과 법무부 감찰위원회의 반대에도 불구, 일사천리로 징계위를 밀어붙이는 등 가히 눈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덩달아 '침묵'으로 자신을 포장하던 대통령도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찍어내기에 부담을 느낀 고기영 법무차관 후임으로 이용구 차관을 임명하며 윤석열 징계위 가동을 사실상 독려했다. 정경심과 윤석열 판결을 앞두고는 대법원장과 현재 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형식은 '5부 요인 초청 간담회였지만 두 판결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로 읽힌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허나 법원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권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고 이젠 수습 방도를 찾아 허둥대게 생겼다.

잇단 법원 판결이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나오자 여권이 벌떼같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여권 스피커인 김어준은 자신의 방송프로에서 "일개 행점 법원 판사가.."운운하며 게거품을 물었다. 여당 의원들은 더욱 가관이다. 윤 총장 2개월 직무정지 불가 판결이 나오자 여당은 당혹해 하면서도 "(검찰과 법원의) 법조 카르텔"(민주당 신동근) "검찰과 사법이 하나 된 '법적 쿠데타'"(김어준)라는 비상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경심 구속 이후에는 거의 몰상식이 판을 쳤다. 조국 살리기로 국회의원이 된 어떤 이는 "(정경심 구속 판결에) 가슴이 턱턱 막히고 숨을 쉴 수 없다"고 했고 어떤 음식평론가는 조국 전장관을 '십자가를 진 예수'로 표현했다. 진중권 교수는 이들을 향해 "단체로 실성했다"고 일갈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비이성과 몰상식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였다.

대통령은 어제 윤석열 직무 2개월 정지 불가 판결에 대해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알 듯 모를 듯한 표현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검찰총장 2개월 직무정지를 재가한 것이 잘못"이란 걸 사과한다는 것인지, "검찰총장 재가가 법원에서 기각돼 (자신의) 뜻을 못 이룬 것을 사과한다"는 것인지 그 의도도 분명치 않다. 법률가 출신답게 충분히 검토했겠지만 정말 뜨뜻미지근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쟁점이 될 만한 일에는 절대 언급을 않는 '회피 전략'을 펴왔다. 퇴임 후 안전을 감안해 법적으로 책임질 일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이를 '작심하고 비겁하기'라고 했지만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둔 국민으로서는 참 서글프다. 중차대한 국가 대사를 이런 '결정 장애?' 지도자한테 맡기고 있다는 게 여간 불안한 일인가?

여하튼 연말연시를 맞아 국민들에게는 '사이다'같은 청량감을 안겨준 법원 판결이 잇따라 재차 다행이란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만 옳다"는 여권의 국정운영 방식에 국민들이 얼마나 진저리를 쳤는가. 말을 바꿔서 여권이 정말 정치나 정책이라도 잘했다면 나는 또 이런 말을 않는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되레 서민들 핍박하거나 힘을 빼고, 부동산, 일자리, 코로나 뭐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있나? 복지와 구제기금 명목으로 돈 쓰는 일에는 이골이 났고, 그나마 기대를 했던 한반도 평화 정책도 북한에 끌려다니며 무능만 보이고 있다. 시쳇말로 '적폐 청산'이라고 했지만 지금 이 사람들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신(新) 적폐'가 돼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아직도 무슨 일만 있으면 '남 탓' '전 정권 탓'을 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 "한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미덕만 가졌고, 다른 쪽 지지자는 몽땅 바보, 멍청이, 악당일 리 없다"고 말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아주 국민들 알기를 우습게 안다. 아무리 "눈 가린 말이 마차를 끄는 것이 권력"이라지만 한 3년 반 권력 잡아 누릴 것 다 누리더니 아무나 무시하면서 안달을 치는 꼴이 목불인견이다. "해가 바뀐다고 못난 놈이 달라지겠나"마는 새해에는 "개혁의 대상들이 '개혁' '개혁'이라 말하는 꼴은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상곤 전 청와대 행정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