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준비 안된 중소기업들 "훨씬 더 어려운 시기"

입력 2020-12-27 15:36:50 수정 2020-12-27 21:29:42

염색업 "대부분 수작업 숙련공 중요" 제조업 "탄력근로제는 큰 도움 안돼"
건설업 "공사 지연 땐 결국 집값 영향" 숙박업 "성수기 때 단기 알바 써야죠"
“이대로 주52시간제 도입되면 대구 전통산업 근간 흔들릴 것”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역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대구 서구 염색공단 한 공장 지붕에 까지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역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대구 서구 염색공단 한 공장 지붕에 까지 공장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내년부터 주52시간제를 적용받는 대구 기업들이 생존 갈림길에 섰다. 점심과 저녁시간에도 공장을 돌리고 주말 근무를 폐지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생산성 감소로 인한 경쟁력 하락은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달 중기중앙회 대경본부가 실시한 지역 527개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중소기업·소상공인 경영실태조사'에서는 '내년 코로나19 악화 시 대응 방침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61.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을 축소하거나(14.2%), 휴·폐업을 검토한다(12.0%)는 응답도 상당했다.

특히 섬유·자동차부품 제조업과 건설업 등 지역의 뿌리산업에 주52시간제가 미칠 영향은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중기중앙회 대경본부 관계자는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금 획기적인 대책 없이 주52시간제를 강행한다면 대구·경북의 거의 모든 사업장이 내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구 전통산업…"산업 근간 흔들릴 것"

대구 제조업을 지탱하고 있는 섬유업과 자동차부품업의 경우 집단 근로 형태를 띠는 업종 특성상 주52시간제 적용은 곧 생산성 급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면 대구 전통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과거 섬유도시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대구는 오랜 기간 지속된 우울한 업황에다가 주52시간제까지 눈앞에 닥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특히 연속적인 업무 과정과 숙련공의 역할이 중요한 염색업계가 입을 타격은 가늠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구염색산업단지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A씨는 "염색은 약간의 수질과 기온, 수온 변화에도 불량품이 발생할 만큼 민감한 작업"이라며 "업무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오늘 하던 공정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종류가 다른 실로 만드는 교직물은 염색공정에만 6시간이 걸린다.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근무시간은 9시간 정도로 줄어드는데, 교직물 염색을 한 번 하면 다른 업무는 엄두를 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현재 월~토요일 주·야간 체제에서 52시간제 이후에는 월~금요일 주간 체제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얘기다.

A씨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공장 가동률이 낮아졌는데 52시간이 적용되면 가동률은 더 낮아져 채산성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어서 추가 고용은 커녕 구조조정을 해야할 판"이라고 했다.

천연염색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천연염색은 자동화가 어려워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져 근로자 숙련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기존에 근무하는 숙련공이 오래 일을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데 신입에는 사수까지 붙여야 할뿐더러, 기피업종 특성상 새로운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역 제조업의 근간인 자동차부품 제조업계는 이미 주52시간제에 대비해 공장 자동화를 시작한 곳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매출 비례로 추가로 인력을 고용할 수는 없게 됐다는 것이 업계 얘기다.

대구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대표는 "내년을 대비해 올해 설비 자동화를 많이 진행했다"며 "직원이 줄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매출이 늘어난다고 인력을 늘리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식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제조업은 꾸준한 업무량이 있어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리는 경우를 위한 탄력근로제는 별다른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C씨는 또 "인건비가 비싸고 노동 유연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무턱대고 인력을 추가 채용하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결국 기업인의 투자 의욕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업 "공기 지연은 명약관화, 집값 오를 수도"

대구 산업의 또다른 축인 건설업계는 주52시간제로 인해 정해진 공사 기한을 지키지 못할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지연된 공기가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미 주52시간제를 시행 중이라는 대구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원래는 '돌관공사'라고 해서 특정 기간 집중적으로 장비나 인력을 투입하는 기간엔 일요일도 현장이 돌아가곤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스톱 상태"라며 "평일에도 공사를 하다가 오후 5시면 모두 집에 간다. 자연히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고 작업 효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기가 늘어지면 각종 금융비용이나 현장 관리비용이 올라가고 건설사에는 부담이 된다. 결국 이것이 집값에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고용 창출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온다.

또다른 지역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는 근로 시간을 줄이면 사람을 더 뽑아 쓸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건설현장은 인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항상 부족한 상태"라며 "타일이나 미장 등은 숙련공 1명의 근로 시간을 늘리는 게 훨씬 효율적인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숙박업계 "단기알바 늘 것", 플랫폼기업 "우린 어떻게 근로시간 산정?"

올해 코로나19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숙박업계는 인력 운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 단기 아르바이트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대구 한 4성급 호텔 관계자는 "호텔업은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하다. 평소에는 주52시간을 초과하는 상황이 나오지 않다가도 연말연시면 자정까지 근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결국 내년에 영업이 정상화되더라도 정규직 인력을 더 뽑기보다 단기 알바를 많이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해당 호텔은 주52시간제 준비로 직고용했던 주방 조리직 직원들을 외주업체를 쓰는 방식으로 바꿨다. 호텔 관계자는 "경기가 최악이고 최저임금도 지속해서 올라 인력 채용에 애로사항이 많다"며 "다른 부문도 직영보다 외주를 주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주52시간제에 따른 근무시간 산정 자체가 어려운 업종도 있다.

주문관리시스템을 개발하는 대구 한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은 근로 시간을 무 자르듯 나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주52시간을 재야 하는지 난감하다"며 "실정법에서 업무 형태에 따른 근로시간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한 차례 더 계도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지만 정부의 반응은 마뜩잖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최근 내놓은 호소문에서 "정부는 뿌리산업 등 근로시간 조정이 어렵거나 만성적인 인력난으로 주 52시간제 준수가 곤란한 업종만이라도 계도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며 "나머지 업종에 대해서는 처벌보단 현장 컨설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말 브리핑에서 계도기간 종료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연말까지 최대한 법 준수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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