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불한당의 나라

입력 2020-12-24 05:00:00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사기꾼이 있었다. 하지만 사기꾼이 형조(刑曹)의 수사관들을 개혁되어야 할 집단이라고 규정하는 나라, 이에 형조판서가 맞장구치며 수사관에게 치도곤을 안기는 나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말고는 없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수사관의 일은 범죄를 수사하는 거였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의 수사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범죄 중에 어떤 놈의 범죄를 수사해야 하는지, 어떤 놈의 범죄는 절대로 수사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일이었다. 범죄라면 일단 수사부터 하고 보는 분별력 없는 수사관은 예외 없이 멍석말이를 당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파렴치한이 있었다. 하지만 파렴치한의 몸이 상할까 시민이 걱정하는 나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말고는 없었다. 이 나라의 중산층인 '대깨문'은 파렴치한이 행여 비에 젖을까, 바람에 날릴까, 소박을 당할까 노심초사하여 밤낮으로 당산나무 아래, 아니 인터넷 댓글 창 앞에 앉아 '님들의 무사안위'를 앙망하는 글을 올리느라 바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위조범은 있었고, 마땅히 수사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서는 형조참판이 "(위조 서류쯤은) 돈 몇십만원 주고 다들 사는 건데 그런 걸 왜 수사하느냐?"고 되레 수사관을 비난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전염병이 돌아 백성들이 병들거나 죽는 일이 있었고, 집권자가 갈팡질팡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집권층이 제때 알뜰히 살피지 못해 낭패를 당한 것을 '전략적 갈팡질팡'이라고 우기는 나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말고는 없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집권 세력에게는 가시지 않는 번뇌가 있었다. 그 번뇌는 백성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는 데서 기인했다.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집권 세력의 잠 못 이루는 번뇌는 장기 집권과 자기 편의 무사안위를 염려하는 데서 기인했다.

그 나라 백성들이 말했다.

"처음에는 임금 주위에 불한당(不汗黨)이 많아 그런 줄 알았다. 좀 지난 뒤에는 임금이 어리석어 불한당에게 잘 속는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임금 자체가 불한당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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