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마다 대구공동모금회 찾던 익명 기부자
"나누는 동안 행복했다…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 탄생하길"
22일 화요일 오후. 대구 동구 신천동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수화기 속 남성은 "오늘 저녁에 시간됩니까? 저녁식사 합시다"라고 말했다. 이맘때마다 기다리던 '키다리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기부자가 있다. 10년전부터 매년 연말이면 공동모금회를 찾아 거액의 기부금만 전달하고 홀연히 사라지면서 자신의 이름은 알리기를 원치 않아 사람들과 언론에서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기 시작했다.
올해는 그가 2012년 1월 첫 기부를 하며 약속했던 마지막 '10번째' 기부를 앞두고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의 반가운 전화를 받고 그날 저녁 작은 매운탕 집에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이희정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 김용수 모금팀장, 김찬희 담당자가 식당에 도착하자 키다리 아저씨가 타고 온 10년이 훨씬 지나 보이는 승용차가 서 있었다.
식당에 기다리고 있던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낡은 가방 속에서 5천여만원의 수표와 메모가 들어 있는 봉투 한장을 꺼냈다.
메모에는 "스스로와의 약속인 10년의 기부를 마지막으로 익명기부를 마무리 한다" 라는 말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앞으로도 많은 키다리 아저씨들이 나눔에 참여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쓰여있었다.
또 "나누는 동안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꼈다"라는 소감도 전해졌다.
키다리 아저씨는 짧은 시간 공동모금회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나눔에 대한 사연을 전하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는 경상북도에서 출생 후 1960년대 학업을 위해 대구로 왔다. 부친을 여의고 일찍 가장이 됐고 생업을 위해 직장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사모님과 결혼 후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한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늘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해왔고, 수익의 3분의 1을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이어왔다.
그 후 회사를 경영하면서 많은 위기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부를 중단하기를 권유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수익의 일부분을 떼어놓고 나눔을 이어왔다.
키다리 아저씨의 사모님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부할 때에는 남편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신문에 키다리 아저씨가 남긴 필체를 보고 남편임을 짐작 해 물어서 알게 되었다"는 웃음 가득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 후 남편의 나눔을 지지하고 응원했으며 키다리 아저씨는 10년의 약속을 이어올 수 있게 됐다.
아버지가 키다리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된 자녀들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며, 손주 또한 할아버지를 닮아 일상생활 속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전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며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탄생되어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60대의 키다리아저씨는 2012년 1월 처음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방문해 익명으로 1억원을 전달하며 나눔을 시작했다.
이어 2012년 12월 1억2천300여만원, 2013년 12월 1억2천400여만원, 2014년 12월 1억2천500여만원, 2015년 12월 1억2천여만원, 2016년 12월 , 2017년 12월, 2018년 12월 각각 1억 2천여만원 등 10회에 걸쳐 총 10억3천여만원을 전달했다.
2019년 12월에는 "나누다 보니 적어서 미안하다"는 메모와 함께 2천여만원의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희정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오랜 시간 따뜻한 나눔을 실천 해 주신 키다리 아저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기부자님의 뜻에 따라 꼭 필요한 곳에 늦지 않게 잘 전달하여 시민 모두가 행복한 대구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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